민노총 성폭력 피해자, 전교조 사과문 반박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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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초기 축소에만 급급 동의없이 신분 노출시켜”
전교조 기관지에 심경밝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도부에서) 사건의 본질을 과도하게 감추려고만 했기에 사건 초기부터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조직이 스스로 막는 크나큰 과오를 범했다.”

지난해 12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간부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전교조 기관지인 ‘교육희망’을 통해 자기 심경을 밝혔다.

피해자는 ‘민주노총 성폭력 피해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13일자에 쓴 글에서 “무엇보다도 동지와 조직의 외면으로 받은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워 잠도 잘 수 없었고 먹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피해자는 사건 후유증으로 급격한 체중 저하, 탈모, 시력 저하, 정서 불안,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다. 정신과 치료도 10개월 넘게 받고 있다.

그는 “(이 사건을) 전교조와 함께 해결하려고 했지만 그런 저의 바람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저는 외부 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인권실천시민연대가 처음 이 사건을 공개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 후 피해자와 소속 전교조 지회 집행부는 올 8월에 만나 ‘정진후 위원장 및 징계를 받은 (성폭력 은폐 연루 당사자) 3명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징계자들이 자숙 기간을 보낼 것을 요구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정 위원장을 만나 이런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수용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조직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8월 29일 열린 전교조 전국대의원대회(대대)에서도 피해자의 요구를 담은 안건은 부결됐다. 당시 피해자는 편지글을 통해 “마지막까지 조직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다. 대대에서만이라도 이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 제 마지막 희망”이라고 대의원들에게 호소했다. 피해자뿐 아니라 소속 지회 집행부도 (대대 이후) 조직에 대한 실망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썼다.

피해자는 “대대 이후 조직은 저를 더욱 방치했는데 갑자기 10월 21일자 교육희망에 징계자 3인과 위원장의 사과문을 냈다”며 “조직은 사과문조차 저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기관지에 내보내는 가혹함으로 저에게 또 상처를 주었다”고 썼다. 피해자의 글은 전교조 지도부가 기관지 사과문 형태로 의견을 밝힌 데 대한 반박인 셈이다. 피해자는 사과문으로 자기 신분이 노출돼 대인기피증이 더 심해졌다고 쓰기도 했다.

피해자는 “저는 조합원이었고 지금도 조합원이며 앞으로도 조합원으로 살아가고 싶다. (전교조가) 저의 희망을 이루어줄 조직이라 믿고 믿으며 기다리겠다”고 글을 마쳤다.

한편 이 사건 가해자인 민주노총 전 간부 김모 씨(45)는 지난달 14일 서울고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전교조 조합원 3명 중 한 명은 벌금 500만 원, 나머지 두 명은 200만 원을 받았다. 피해자 지지모임 관계자는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인 김 씨 부인이 직접 피해자를 찾아와 선처와 합의를 호소하는 바람에 피해자가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전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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