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李대통령 “영리병원 도입 더 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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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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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감정싸움 깊어지자 유보 지시
재정-복지부, 용역보고서 상반된 해석… 공동브리핑도 취소
5년간 접점없이 소모적 논쟁… 혼란만 키워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가족부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도입과 관련해 유보적인 견해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15일 “이 대통령이 보고를 받은 뒤 ‘민감한 현안이고 공공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것이라는 오해도 있는 만큼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하라’는 취지로 얘기하며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직접 교통정리에 나선 것은 재정부와 복지부의 견해차를 그대로 둘 경우 국정운영의 난맥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두 부처는 15일 공동 용역보고서와 공동 보도자료를 내놓고도 똑같은 문구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며 감정싸움의 양상까지 보였다.

이 대통령의 언급으로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해 영리병원을 도입한다는 재정부의 방침은 사실상 보류됐다. 2005년 1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한 것을 계기로 촉발된 영리병원 논쟁도 5년 만에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하지만 영리병원을 둘러싼 재정부와 복지부의 갈등은 주요 정책 현안에서 국정 컨트롤타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국민이 피곤해지고 국정에 어떤 폐해가 빚어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 1 ‘영리병원 도입’ 합의했나, 안 했나

재정부와 복지부는 15일 공동 보도자료에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공청회 등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도입 방안과 부작용에 대한 보완 방안 등의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 부처의 한목소리는 여기까지였다. 재정부 관계자는 ‘영리병원 도입을 기정사실화한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게 봐도 무방하다”고 답했다. 그는 “도입의 필요성을 서로 확인했고 지금부터 도입 방안과 부작용 해소 방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왜 도입하지도 않는 정책에 대해 부작용 해소 방안을 마련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결론을 낼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나는 (재정부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또 “주무 부처는 복지부이며 복지부가 중심이 돼 논의를 해나갈 것”이라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관련 법령의 소관 부처가 복지부인 만큼 이 문제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 2 재정―복지부 상반된 논리, 근거는?

재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인용한 한국은행의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의 경제적 효과’ 분석 결과에 주목한다.

영리병원 도입을 계기로 의료서비스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3.1%(2007년 기준)에서 미국 영국 일본 등 3개국 평균인 5.6%로 끌어올리면 중장기적으로 24조 원의 부가가치와 21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복지부의 용역을 받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측은 경제적 효과는 인정하면서도 부작용을 더 우려한다. 진흥원은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국민의료비가 크게 증가하고 상당수 의료인력이 영리병원으로 일시에 이탈해 국민의 의료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 3 왜 모호한 표현을 썼을까?

당초 공동 용역보고서가 나오면 재정부와 복지부가 상당 부분 의견 접근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재정부와 복지부가 ‘도입하겠다’는 명시적 표현 대신 에둘러서 ‘도입 방안을 논의한다’고 밝힌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재정부 관계자는 “재정부와 복지부가 합의한 문구”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답답하다. 재정부는 좀 더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복지부의 생각은 달랐다. 복지부 측은 “결론을 내지 못했으니 말 그대로 더 논의하겠다는 뜻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부처 간에 충분한 조율이 안 된 상태에서 발표해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 4 공동브리핑 취소한 이유도 불투명

두 부처의 갈등은 용역보고서 공개 하루 전인 14일에도 심각했다. 당초 재정부와 복지부는 15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에 있는 복지부 청사에서 공동 브리핑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4일 오후 재정부가 정부과천청사에서 재정부 담당 기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배경 브리핑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복지부는 “용역보고서와 보도자료만 배포하고 공동 브리핑은 취소한다”고 재정부에 통보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복지부의 주요 정책 고객인 의료계의 반발을 의식해 취소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복지부 측은 “재정부의 사전 브리핑 내용이 우리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브리핑을 취소한 이유조차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은 것이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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