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 -기념사업회 소송 줄이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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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강압 등 고려없이 친일 낙인 찍어”
김연수 - 김동인 - 이동욱 후손 등 반발

규명위가 27일 조사 대상 3기의 친일인사 등 704명의 명단을 새로 발표하자 명단에 포함된 인사들의 후손과 기념사업회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후손 등은 일제의 강요나 조직의 존속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친일’로 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어 친일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사 대상 1, 2기 발표 이후 10여 건의 소송이 제기됐고, 이번 3기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이전부터 친일파 명단에 포함된다는 통보를 받은 후손들이 반발해 왔다. 국방헌금 납부 등의 이유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김연수 전 삼양사 명예회장의 후손들은 규명위 결정을 통보받고 9월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후손들은 소장에서 “김 전 회장이 민족기업인 경성방직 이름으로 일제에 국방헌금을 낸 적이 있지만 이는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으로 기업 존립과 종업원의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기업 차원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물을 수는 없다”고 항변했다.

산문과 소설을 통해 학병 및 징병, 침략전쟁 등을 선전 선동했다는 이유로 친일파 명단에 오른 소설가 김동인의 후손들도 23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문학가의 예술작품이 어떻게 정치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며 “예술가는 어떤 소재라도 다룰 수 있고, 문학 작품을 친일 반일이라는 정치적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김활란 전 이화여대 총장은 기고문을 통해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고 조선총독부 외곽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정신연맹의 발기인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친일파 명단에 포함됐다. 이화여대 이화역사관은 “김 전 총장의 행위는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점이 있었고, 광복 이후 교육과 외교 분야에서 쌓은 공적도 감안해야 한다”며 규명위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평생 독신이었던 김 전 총장은 후손이 없어 이화역사관이 이의를 신청했다.

‘기독교신문’의 이사와 편집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는 이유로 친일 인사에 포함된 백낙준 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교장의 후손들은 “규명위는 백 전 교장이 친일 기고와 강연 등을 통해 친일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친일활동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반발했다. 기독교 감리교회 이동욱 목사는 일제의 종교통제 방침에 적극 협력해 황민화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친일인사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 목사의 장남 이의열 씨(86)는 “아버님은 기독교 감리교회 본부 간부로서 일제 탄압 아래 기독교회의 생존을 위해 사투하는 과정에서 큰 화를 입었다”며 “돌아가신 지 6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친일 반역자로 낙인찍으려는 것은 실로 개탄할 일”이라며 탄원서를 작성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내기로 했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친일인사 명단에서 유보된 작곡가 홍난파의 후손들은 홍난파를 명단에서 제외하기 위한 본안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난파기념사업회 정희준 이사는 “규명위는 직계가족이나 특별관계인이 아니면 이의신청도 받지 않고, 공개적으로 토론조차 하지 않으면서 친일인사 명단을 발표했다”며 “소송에서 이겨 난파 선생의 명예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기남 전 천주교 대주교가 일제의 침략전쟁에 대한 천주교 교단의 협력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친일파 명단에 오른 것에 대해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일제 강압통치 아래 천주교회 수장으로서 교회와 교인을 지키기 위한 자기희생이었고, 사적 이익과 영달을 추구한 친일과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규명위의 위원이나 위원장을 상대로 한 민형사상 소송을 봉쇄하고 있는 일제강점하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조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별법 29조는 “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작성 공개된 조사보고서 또는 공표 내용에 관하여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위원들의 법적 책임을 사실상 면제해 주는 셈이어서 후손이나 유족 등이 규명위의 결정에 따른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규명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밖에 없다. 10건이 넘는 소송이 규명위를 상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규명위가 27일 공식 활동을 끝냈기 때문에 책임 주체마저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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