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털’들 툭하면 석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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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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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집행정지 심사때 외부인사 참여 추진

대검 ‘심사위원회’ 도입
투명성-공정성 높이기로


한보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병을 이유로 여러 차례 형 집행정지 기간을 연장받다가 2002년 사면을 받았다. 나중에 서울의 모 대학병원장에게 2000만 원을 주고 가짜 소견서를 만들어 제출해 형 집행정지를 연장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후 정 전 회장은 또 다른 횡령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던 2007년 5월 신병 치료를 이유로 외국으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

○ 툭하면 병으로 풀려나는 ‘범털’들

북풍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던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비롯해 재산 국외도피죄로 징역 5년형이 확정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역시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풀려난 뒤 그 기간에 사면을 받아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다.

이른바 ‘범털’이라고 하는 유력인사들은 ‘추간판탈출증’(디스크) 등 생명에 별 지장이 없는 병으로 형 집행정지를 받는 사례가 잦은 반면 일반인 재소자들은 간암이나 폐암 말기 등 누가 봐도 정상적인 수감생활이 어려운 경우에만 형 집행정지를 허가받는 실정이다. 사기죄로 징역 1년 6개월형이 확정된 A 씨는 간세포암이 복강과 폐로 전이된 간암 4기 판정을 받고 1년 2개월의 형기를 남긴 올 6월 형 집행정지를 받았다.

형 집행정지는 △형의 집행으로 건강을 현저히 해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을 때 △임신한 지 6개월 이상인 때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지방검찰청 검사장의 허가를 받아 일시 석방하는 제도다. 취지로만 보면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위중한 때에만 선별적으로 허가토록 돼 있다.

○ 심사과정에 외부인사 참여시키기로

검찰이 유력인사와 일반인 재소자 사이에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형 집행정지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심사 과정에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형 집행정지 심사위원회’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대검찰청은 지난달 형 집행정지 심사위원회를 도입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일선 검찰청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전국 지검에 개선안을 내려 보냈다. 대검은 연말까지 일선 지검의 논의 결과를 취합한 뒤 내년 상반기에 검찰 내부지침을 개정해 새 방안을 시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선안은 형 집행정지 심사위원회에 재소자를 진료한 주치의가 아닌 제3의 의사와 변호사 등 외부인사와 지방검찰청 차장 및 공판담당검사, 공중보건의 등 검찰 측 관계자가 참여해 해당 재소자의 형 집행정지 여부를 검증한 뒤 그 결과를 최종 결정권자인 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제출토록 한다는 게 골자다. 지방검찰청 검사장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지금과 똑같지만, 민간전문가가 참여한 심사위원회가 ‘권고적 효력’이 있는 의견을 냄으로써 형 집행정지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제도 개선에 나선 이후 일선 검찰에서는 고위층 재소자들의 형 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허가하지 않고 재수감하는 등 이전보다 엄격해지는 분위기다. 서울중앙지검은 제이유그룹에서 세금감면 청탁과 함께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돼 복역하다 심장질환을 이유로 형 집행정지 중이던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2차 연장 신청을 불허하고 지난달 9일 김 씨를 재수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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