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식물 다 모였네, 한라산 보물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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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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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0고지 습지 탐방
250종 1차 확인… 생태역사 간직 이탄층도 발견
벌써부터 무분별 채취… 훼손 막을 대책 세워야


한라산 해발 1100m 일대에 형성된 습지는 식물의 보물창고로 불릴 만큼 다양한 희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생성과정이 알려지지 않은 바윗덩어리는 마치 한라산 산신들이 놓은 바둑알인 양 습지 곳곳에 있다. 제주=임재영 기자
한라산 해발 1100m 일대에 형성된 습지는 식물의 보물창고로 불릴 만큼 다양한 희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생성과정이 알려지지 않은 바윗덩어리는 마치 한라산 산신들이 놓은 바둑알인 양 습지 곳곳에 있다. 제주=임재영 기자
기장대풀, 잔디바랭이 등이 누렇게 변한 한라산 1100고지. 습지 한쪽에 연초록빛 6가닥의 줄기를 진흙바닥에 눕힌 부추 모양의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라물부추.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종. 부추처럼 생겼지만 부추 종류가 아니다. 땅속 뿌리 부위에 포자를 담는 고사릿과 식물. 현장에서 실제로 본 식물 전문가가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하다. 직접 확인하는 행운을 얻었다.

○ 한라산 보물창고

이달 5일 찾은 1100고지 습지는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아그배나무에 달린 노란 열매는 생기를 잃었다. 사위질빵의 하얀 솜털은 늦가을 빗방울에 힘없이 쓰러졌다. 지난달 초 환경부는 1100고지 습지를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전체 면적은 12만5511m²(약 3만7960평)에 이르지만 1만8000m²(약 5440평)에 대한 1차 조사(2008년 7월∼2009년 4월)만 이뤄졌다. 해발 1100m 내외에 위치했지만 1400m 이상 고지대 식물이 자라는 특징을 보인다. 애기더덕, 설앵초, 한라물부추, 눈개쑥부쟁이, 꽃창포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빗물에 쓸려 내려온 고산식물 씨앗이 이 습지에 터를 잡은 것. ‘한라산 보물창고’라는 명성을 얻을 만큼 다양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자주땅귀개 설앵초 잠자리난초 애기더덕.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자주땅귀개 설앵초 잠자리난초 애기더덕.

최근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식물인 자주땅귀개가 군락을 이룬 것으로 확인됐다. 봄과 여름에는 잠자리난초, 산제비난 등 희귀 난초가 화려한 꽃을 피운다. 신용만 전 한라산국립공원 자문위원은 “한라산 특산이거나 희귀식물이 모여 있는 집합소나 다름없다”며 “조금씩 습지식물 분포가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무분별한 채취가 이뤄져 훼손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습지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를 이루는 1100고지 탐라각휴게소 동쪽지대에 포진했다. 이스렁오름(해발 1352m), 쳇망오름(해발 1354m), 볼래오름(해발 1374m) 등의 소(小)화산체 사이로 흘러내린 빗물이 습지를 만들었다. 660∼1650m²(약 200∼500평) 규모의 크고 작은 습지를 꽝꽝나무, 솔비나무, 산철쭉 등이 둘러쳤다. 외래식물 유입을 서어나무, 졸참나무, 단풍나무 등 울창한 숲이 막아준다.

○ 종합학술조사 시급

습지는 남북으로 길게 누운 평탄 지형으로 일부는 1100도로에 잘려나갔다. 도로 주변에 습지 탐방객을 위한 목재 산책로를 만들었다. 산책로 주변 물이 있는 곳은 좀개수염, 올챙이고랭이, 세모고랭이 등이 군락을 형성했다. 습한 지역은 기장대풀, 잔디바랭이가 우세하고 습지 생명이 막바지에 이른 지역은 제주조릿대가 침범했다. 습지의 육화(陸化) 과정을 모델로 제시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다.

산책로를 벗어나 조그만 하천을 건너 한라산 방향으로 더 진입했다. 마치 푹신한 이불 위를 걷는 등 흙이 말랑말랑했다. 이탄층(泥炭層)이었다. 밑을 파면 수백 년, 수천 년에 이른 식물 찌꺼기가 나올 듯했다. 한라산 식물상 변화를 밝혀줄 열쇠를 쥐고 있지만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도환경자원연구원 고정군 박사는 “1차 조사 대상 면적이 협소하고 기간도 짧았지만 250여 종의 식물을 확인할 정도로 식물종 다양성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아 람사르 습지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며 “1100고지 습지를 포함해 한라산 고산습지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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