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나면 누구나 타미플루 처방’ 조치, 의료 현장에선…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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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 못 받았다” 확진때만 투약 여전
“무작정 처방땐 내성-약 부족” 우려도

보건당국은 26일 모든 의료기관이 신종 인플루엔자 의심 증세가 있는 열이 나는 급성 호흡기질환자에게 확진 검사 없이 타미플루 같은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도록 지침을 변경했지만 일선 의원이나 병원에는 지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의사들은 검사 없이 처방하는 것을 두고 고민하거나 가까운 거점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27일 서울 용산구 A소아과. 오전에만 감기 증상으로 50여 명의 환자가 내원했다. 이 병원에서는 신속항원검사를 한 뒤 양성이 나오면 확진검사를 의뢰하고 증상이 심한 아이에게만 타미플루를 처방한다. A소아과 의사는 “보건당국이 감기 증상만으로도 타미플루를 처방하라고 했지만 검사가 없다면 감기를 달고 사는 영유아는 가을과 겨울 내내 타미플루를 먹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영유아들은 내성이나 부작용을 고려해 보수적으로 처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확도가 낮은 신속항원검사가 신종 플루 진단법에서 제외됐지만 여전히 이뤄지고 있었다. 검사 없이 타미플루를 처방할 경우 감기 환자가 많은 요즘 모든 내원 환자에게 처방해야 할 판이다. 또 확진 검사가 밀려 있는 것도 문제다. A소아과가 의뢰한 검사기관을 보면 확진검사 의뢰가 7000건이나 폭주해 결과가 나오기까지 3, 4일이 걸린다. 이렇게 되면 48시간 이내인 타미플루 투약 시기를 놓치게 되므로 검사가 의미가 없어진다.

27일 하루에만 150여 명의 감기 증세 환자가 찾아온 서울 영등포구 J 소아과 원장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항바이러스제 투약 지침 공문을 받은 것은 없고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됐다”면서 “확진 검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 고열이 있는 신종 플루 의심환자가 오면 바로 타미플루를 처방해 주기보다는 주위 거점병원으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타미플루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J소아과 원장은 “약을 적극 처방할 경우 거점약국이 우리 지역에 별로 없어서 약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의 S가정의학과 원장도 “이러다가 나중에 약이 부족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거점병원 중 한 곳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의 경우도 관련지침 공문을 못 받아 기존 방식으로 환자를 보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신종 플루 검사 결과 확진환자에 대해서만 처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면서 “하지만 의심환자 중에서 고위험군이나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검사와 상관없이 처방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도 환자들이 오면 검사를 기본적으로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 병원에는 2주 전까지 하루 40명에 불과하던 신종 플루 의심 외래 환자가 최근 140여 명으로 늘었다. 병원 관계자는 “검사 없이 신종 플루가 아닌 환자에게도 무작정 타미플루를 처방하면 결국 내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거점병원에 환자들이 넘치고 검사 키트가 부족해 아마 정부에서 차선책으로 내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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