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떠돈 네티즌장학금 결국 해외로

  • 입력 2009년 10월 11일 0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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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단체엔 기부하지 않을 겁니다. 이제는 믿을 수가 없어요."

온라인시민단체인 사이버행동네트워크(이하 사이버행동)의 황용수 대표(41)에게 3억 원의 기부금은 영광이자 상처다. 황 대표는 꼭 10년 전인 1999년 10월 청바지업체 '닉스'가 마련한 도메인 공모에서 사전에 수상자가 결정돼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해 누리꾼 수만 명과 함께 해당사의 사과문과 3억 원의 사회환원금을 받아낸 장본인이다. 황 대표를 비롯한 누리꾼들은 이 돈을 국내사회단체에 기부하기로 했고 학계에서는 이 사건을 국내 '사이버운동'의 효시로 평가했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뿐이었다.

사이버행동은 국내 최초의 사이버시위를 통해 환수한 3억 원을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해 해외 난민들과 베트남 소수민족 어린이를 돕는 교육지원사업에 쓰도록 할 예정이라고 11일 밝혔다. 황 대표는 "의미 있는 돈인 만큼 꼭 국내에 도움이 되게 쓰고 싶었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3억 원은 곧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영국의 자선단체 옥스팜에 전달된다.

지난 10년 닉스가 환원한 3억 원은 유랑을 거듭했다. 사이버행동은 1999년 12월 민간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이 돈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정보통신 분야에 있어 뜻 깊은 일을 하는 데 사용하도록 하자는 누리꾼들의 뜻에 따라 북한 어린이들에게 컴퓨터를 보낼 예정이었다. 얼마 뒤 단체에 컴퓨터 배송 여부를 문의했던 황 대표는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컴퓨터 대신 비료를 사서 보냈다는 것이었다. 테러지원국에 전략물자 유출을 금지한 '바세나르협정'에 따라 컴퓨터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황 대표는 "그렇다면 기부자에게 상의라도 했어야 옳았다"며 "그나마 이름 있는 단체라 믿고 맡겼는데 실망이 컸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사이버행동 운영진과의 회의를 통해 3억 원을 환수했다.

사이버행동은 누리꾼 투표를 통해 새로운 기부처를 물색한 뒤 2002년 3월 염광여자정보교육고(현 염광여자메디텍고등학교)를 선정했다. 일반 단체라면 몰라도 학교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2009년 4월 학교가 일제고사 선택권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교사 한 명을 파면하자 사이버행동 측은 학교를 규탄하며 장학금 내역서를 요구했다. 도착한 문서는 엉터리였다. 황 대표는 "몇 년 간 한 아이에게 장학금을 몰아준 것으로 돼있거나 장학금 최초기안자의 서명이 다른 식으로 척 보기에도 급조한 문서임이 역력했다"며 "곧바로 서울시교육청과 금감위에 내사를 촉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온 결과는 참담했다. 학교는 차명계좌를 만들어 장학금을 분산예치하고 일부는 전용해 학교장 대출금을 담보하는 데 썼던 것.

사이버행동은 7일 기부금 3억 원을 돌려받았다. 황 대표는 "내가 만들어 한국 최초의 사이버시위를 이끈 'ihateifree.com'은 한국유네스코가 선정한 보존 대상에 올랐다는데 그렇게 뜻 깊은 과정을 통해 탄생한 돈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어 "지난 10년의 기부는 나에게 상처만 남겼다"며 "우리나라에도 기부자의 뜻을 존중하는 기부문화가 조속히 뿌리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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