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짓돈 ‘근로장려금’

  • 입력 2009년 10월 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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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금액 너무 적어 근로의욕 높이기 역부족

올해 59만 가구 첫 지급… 기초생활보장과도 충돌

서울의 한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한모 씨(43)는 최근 정부로부터 근로장려금 120만 원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소득이 1000만 원에 불과했다. 한 씨는 “생각지도 못한 돈이 생겨 요긴하게 썼다”면서도 지원금을 받고 근로의욕이 생겼는지 묻자 “솔직히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고 말했다.

정부는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일을 할수록 더 많은 돈을 지원해주는 근로장려세제(EITC)를 도입하고 올해 59만1000가구에 4537억 원을 줬다. 하지만 본래의 취지는 살리지 못한 채 저소득 근로자에게 ‘쌈짓돈’을 주는 것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 본보가 입수한 ‘2009년 국정감사 정책현안’(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실 작성) 자료에 따르면 EITC는 △수급 기준이 불합리하고 △지급액이 낮으며 △부정수급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따라 12일부터 열리는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EITC의 가장 큰 문제는 기존 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충돌하고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기엔 금액이 적다는 점이다. 정부는 △연소득 800만 원 미만은 소득의 15% △연소득 800만 원 이상 1200만 원 미만은 120만 원 △연소득 1200만 원 이상 1700만 원 미만은 1700만 원에서 소득을 뺀 금액의 24%를 매년 장려금으로 준다.

땀 흘려 연간 1600만 원을 번 가구는 EITC로 24만 원을 받아 1624만 원이 되는 반면 일을 안한 4인 가구는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연간 1592만 원을 보장받는다. 단순계산이긴 하지만 교통비 등을 감안하면 굳이 일을 할 이유가 없는 셈.

또 미국의 연간 지급액 상한이 4400달러(약 515만 원)인 반면 한국은 120만 원에 불과하다. 10만 원을 더 벌면 미국이 장려금으로 최고 4만 원(40%)을 주는 반면 한국은 1만5000원(15%)만 지급한다.

전병목 한국조세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무조건 돈을 나눠주는 것보다 일을 조건으로 지원하는 것이 세계적인 복지 제도의 추세이기 때문에 정부가 EITC를 도입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현실에 맞게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중 근로능력이 있는 이들을 EITC 적용 대상으로 전환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고령층 등 근로 무능력자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만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기초생활보장급여를 깎는 동시에 EITC 급여 수준과 소득 수준에 연동해 받는 장려금 비율을 올리면 어느 정도 효과가 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EITC를 점차 확대할 방침인 반면 보건복지가족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확충해야 한다는 견해를 굽히지 않아 부처 간에도 의견 조율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근로장려세제(EITC·Earned Income Tax Credit):

저소득층 가구가 일을 해 소득이 늘어나는 비율에 따라 정부가 현금을 나눠주는 제도.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 기존 복지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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