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짜리 ‘군대 안가는 수술’… 150만원은 건보혜택 받아

  • 입력 2009년 9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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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만 안 간다면…
어깨 멀쩡한데 탈구 수술
신검서 5급 받아 면제
입대 3주전 수술 받기도

병역 비리의 수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인터넷이 병역을 기피하는 노하우를 전파하는 매개체가 되면서 병역 비리의 당사자도 과거처럼 일부 고위층 아들에 그치지 않고 일반인까지 널리 퍼져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고전수법 ‘어깨 탈구’ 적발 어려워

현재 경기 일산경찰서가 수사하고 있는 어깨 탈구 수술을 통한 병역 기피 수법은 허리 디스크 수술과 함께 고전적인 수법의 하나로 꼽힌다. 병역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단골로 등장했던 수법이다. 그러나 병역기피자와 병원 사이에 은밀한 동의가 이뤄지면 쉽게 병역을 면제받거나 신체등급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인기도 높고 적발도 어렵다.

일산경찰서도 처음부터 어깨 탈구 수술을 해준 서울 강남의 A 병원에 병역 비리 의혹이 있는지 안 것은 아니다. 보험사기를 수사하던 중 A 병원을 내사하다 병역 비리에도 연루돼 있다는 단서를 잡고 7월부터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이번 사건은 통상적인 경우와 달리 입대 예정자와 시술병원을 연결해주는 전문브로커나 조직이 있지는 않았다. 먼저 병역을 기피한 경험이 있는 친구나 지인의 소개를 받았고,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A 병원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2006년 1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수사대상자 203명 가운데 35명은 경찰 조사에서 혐의가 확인된 상태다. 이들은 멀쩡하거나, 수술까지는 필요 없는 상태인데도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1인당 200여만 원을 들여 습관성 어깨 탈구 수술을 받았다. 이어 병원 수술기록과 진단서를 병무청에 제출해 신체검사 4급(공익근무대상)이나 5급을 받아 군 입대 면제 판정을 받았다.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현역 입영 대상인 1급 판정을 받은 뒤 A 병원에서 어깨 탈구 수술을 받은 이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에는 입대 3주 전에 수술을 받아 병역을 기피한 이도 있었다. 이들 중 서울 거주자의 60%가량은 강남 서초 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술비 200여만 원 중 150여만 원은 건강보험 혜택까지 받았다.

○ 병무청도 깜짝 속은 ‘환자 바꿔치기’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적발한 비리는 아예 ‘환자를 바꿔치기’해 진단서를 발부받았다는 점에서 이전의 병역 기피 수법과는 확연히 다르다. 경찰 관계자는 “신체를 훼손하거나, 없는 질병을 만들어서 병역을 피하는 수법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신원을 뒤바꾸는 것은 신종 수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심부전증뿐만 아니라 척추, 시력 관련 질환으로도 병역 기피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환자가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은 뒤 병역을 기피하려는 의뢰인의 건강보험증을 제출하는 수법이라면 척추질환 등 다른 질병 환자를 동원해서도 얼마든지 진단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평소 별다른 증상이 없기에 진단서만으로 넘어가기 쉬운 발작성 심부전증처럼, 판정이 어려운 척추 관련 질환이 동원됐을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얘기다.

과거의 병역 비리는 ‘박노항 원사 사건’같이 주로 병무청 직원을 통해 신체검사 등급을 조작하는 식이었다.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어깨 탈구 수술을 받거나 연골을 제거하는 등 신체를 훼손하는 수법이 주를 이뤘다. 멀쩡한 몸에 일시적으로 질병이 있는 것처럼 꾸미는 수법도 등장했다. 소변에 약물을 타 신장질환을 앓는 것처럼 꾸며 병역을 면제받은 탤런트 송승헌이나 병원 신체검사 전에 다량의 커피를 마시고 항문과 팔에 힘을 줘 고혈압 진단을 받아낸 연예인 쿨케이 등이 대표적 사례다.

○ 병역 비리 있는 곳에 ‘인터넷’ 있다

병역 비리 수법의 진화에는 ‘인터넷’의 역할이 크다는 분석이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들키지 않고 자연스레 시술 병원이나 병역 연기 관련 정보를 접하는 한편 브로커나 환자와 직접 접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검거된 브로커 윤모 씨의 경우에도 ‘병역연기 고민’ 사이트를 운영하며 의뢰자들을 모았다. 심부전증 환자 김 씨가 “대학원생 친구를 내가 대신 진단서를 떼줘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게 했다”라는 글을 띄운 곳도 윤 씨의 게시판. 이 게시물을 보고 윤 씨는 김 씨를 신체검사 등급 조정을 의뢰해온 카레이서 김모 씨에게 연결해줬다.

어깨 탈구 수술 방법을 동원한 이들이 정보를 얻은 곳도 인터넷이었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어깨 탈구와 군 면제에 대한 수많은 글과 상세한 조언이 올라와 있다. 실제로 한 포털 카페에는 회원들에게 병무청 신체등급표와 함께 병역 감면, 입영 연기, 병역특례, 방산업체 등 입영 관련 정보를 상세히 제공하고 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고양=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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