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수사 과정에서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이 사표를 냈다. 검찰이 강정구 교수를 구속하려 하자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으로 수사하라고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김 총장이 이에 반발해 사퇴했던 것.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은 2007년 자서전 ‘폴리스스토리’를 통해 청와대가 강 교수에 대해 구속 의견을 냈던 경찰 보안 수사라인을 모두 징계하라고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한 보안 담당 경찰관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지난 10년 동안은 일을 하면서도 눈치를 봐야 했던 시절”이라고 평가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감소 추세였던 경찰의 보안수사 인력이 최근 증가세로 돌아섰다. 보안사범 검거 건수가 늘어나는 등 보안수사도 활기를 띠고 있다. 보안 수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수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 “한명씩 검거하라 위에서 지시도”
14일 경찰청의 ‘경찰 보안수사 인력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337명이던 보안수사대 인력은 올해 8월 말 현재 378명으로 증가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12%(41명)가 늘어난 것으로, 보안수사 관련 인력이 증가한 것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 10년 동안 경찰의 보안수사와 관련된 조직과 인력은 절반이 줄었고, 수사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경찰청, 각 지방경찰청, 전국 경찰서의 보안 담당 경찰관을 모두 합친 보안경찰의 수는 1998년 3732명에서 매년 대폭 감소해 지난해 1804명까지 떨어졌다. 올해 8월 말 현재는 1818명으로 10년 만에 보안경찰의 수가 절반도 남지 않은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안 경찰관들은 수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서울지역의 한 보안경찰관은 “조직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검거할 인원이 많은데 위에서는 ‘공안정국 조성’이라는 말이 나올 것을 걱정해 한 명씩 검거하라고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며 “그렇게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검거에 나서면 당연히 증거 인멸이 시도되기 때문에 조직사건은 제대로 수사할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 “소신껏 일할 수 있어”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보안수사대는 인력이 10% 이상 보강됐고 보안수사대 1개가 신설됐다. 인력이 늘어나면서 보안사범(간첩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검거 건수도 크게 늘었다. △2005년 33명 △2006년 35명 △2007년 39명 △2008년 40명 등이었지만 올해는 8월 말까지 53명을 검거해 지난해 1년간 검거 인원을 훌쩍 넘어섰다.
또 2000년 이후 방치돼 유명무실했던 보안경과제가 정비돼 7월 856명을 선발한 데 이어 12월에도 2차로 보안경과자를 선발할 계획이다. 보안경과는 보안 전문 경찰을 양성하자는 취지로 만든 제도다. 경찰청 관계자는 “우수인력을 선발·배치해 보안수사에 활력을 불어넣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보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보안경찰이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며 “과거와 외형상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적어도 소신껏 일할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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