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수사 ‘눈치 10년’ 끝?

  • 입력 2009년 9월 15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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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공안정국’ 말 날까 전전긍긍
경찰,인력 절반 이상 축소

2005년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수사 과정에서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이 사표를 냈다. 검찰이 강정구 교수를 구속하려 하자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으로 수사하라고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김 총장이 이에 반발해 사퇴했던 것.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은 2007년 자서전 ‘폴리스스토리’를 통해 청와대가 강 교수에 대해 구속 의견을 냈던 경찰 보안 수사라인을 모두 징계하라고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한 보안 담당 경찰관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지난 10년 동안은 일을 하면서도 눈치를 봐야 했던 시절”이라고 평가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감소 추세였던 경찰의 보안수사 인력이 최근 증가세로 돌아섰다. 보안사범 검거 건수가 늘어나는 등 보안수사도 활기를 띠고 있다. 보안 수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수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 “한명씩 검거하라 위에서 지시도”

14일 경찰청의 ‘경찰 보안수사 인력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337명이던 보안수사대 인력은 올해 8월 말 현재 378명으로 증가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12%(41명)가 늘어난 것으로, 보안수사 관련 인력이 증가한 것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 10년 동안 경찰의 보안수사와 관련된 조직과 인력은 절반이 줄었고, 수사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경찰청, 각 지방경찰청, 전국 경찰서의 보안 담당 경찰관을 모두 합친 보안경찰의 수는 1998년 3732명에서 매년 대폭 감소해 지난해 1804명까지 떨어졌다. 올해 8월 말 현재는 1818명으로 10년 만에 보안경찰의 수가 절반도 남지 않은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안 경찰관들은 수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서울지역의 한 보안경찰관은 “조직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검거할 인원이 많은데 위에서는 ‘공안정국 조성’이라는 말이 나올 것을 걱정해 한 명씩 검거하라고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며 “그렇게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검거에 나서면 당연히 증거 인멸이 시도되기 때문에 조직사건은 제대로 수사할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 “소신껏 일할 수 있어”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보안수사대는 인력이 10% 이상 보강됐고 보안수사대 1개가 신설됐다. 인력이 늘어나면서 보안사범(간첩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검거 건수도 크게 늘었다. △2005년 33명 △2006년 35명 △2007년 39명 △2008년 40명 등이었지만 올해는 8월 말까지 53명을 검거해 지난해 1년간 검거 인원을 훌쩍 넘어섰다.

또 2000년 이후 방치돼 유명무실했던 보안경과제가 정비돼 7월 856명을 선발한 데 이어 12월에도 2차로 보안경과자를 선발할 계획이다. 보안경과는 보안 전문 경찰을 양성하자는 취지로 만든 제도다. 경찰청 관계자는 “우수인력을 선발·배치해 보안수사에 활력을 불어넣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보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보안경찰이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며 “과거와 외형상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적어도 소신껏 일할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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