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의 저승사자 ‘가시박’ 뿌리째 뽑아라

  • 입력 2009년 9월 2일 02시 58분


코멘트
나무 등 덩굴로 뒤덮어 말려죽여
1일 30cm씩 높이 12m까지 자라
“생태계교란식물 국내 11종
민관합동으로 제거 나서야”

자동차를 타고 국도, 고속도로 등을 달리다 보면 길가에 짙은 녹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 주변을 온통 뒤덮은 덩굴식물을 쉽게 볼 수 있다. 공해가 심한 곳에서 용케 살아 녹음을 보여주는 기특한 식물 같지만 실은 한국 식물 생태계를 헝클어뜨리는 외래종이다. ‘가시박’이라는 덩굴식물이다. 이 가시박이 퍼지는 속도는 최근 들어 더욱 빨라지고 있다.

○ 주변 식물 말려 죽이는 유해식물

가시박은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1년생 덩굴식물이다. 일부에서는 ‘안동오이’ ‘안동대목’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90년대 초 유해성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 생존력이 강한 특징을 살려 안동 지역에서 오이덩굴에 접붙이는 방법을 쓰면서 붙은 이름이다. 잎은 지름 10cm 내외로 뭉툭한 별 모양에 가깝다. 줄기는 보통 4∼8m 내외로 자라지만 햇빛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나무를 타고 12m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9월 말에 가시로 뒤덮인 열매를 맺는다.

가시박은 ‘야생동식물보호법 시행규칙’에 따라 ‘생태계교란종’으로 분류된다. 다른 식물을 고사시켜 생태계를 교란하기 때문이다. 가시박은 자라면서 주변 들판 표면이나 나무 등 가리지 않고 덮어버리는 특성이 있다. 깔린 식물들은 햇빛을 받지 못해 말라 죽는다. 강병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자신이 살 공간과 영양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다른 식물을 죽이는 물질을 뿜어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열매에 있는 가시에 사람 몸이 닿을 경우 피부병을 일으키기도 해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식물은 1990년대까지는 경북 안동, 충북 충주, 강원 춘천 외에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국립환경과학원 김종민 박사는 “기후 변화로 집중호우나 큰비가 잦아지면서 가시박의 씨앗이 불어난 물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에는 서울 밤섬, 올림픽공원, 노들섬 등에서도 확산되면서 대대적인 제거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 빨리 퍼지고 구제 어렵다

하지만 가시박은 뿌리를 뽑기가 쉽지 않다. 제초제를 쓰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보호해야 할 다른 식물까지 죽이기 때문에 사실상 어렵다. 사람이 지속적으로 뜯어내는 것 외에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하지만 덩굴을 다 뜯어내도 땅에 뿌리만 박혀 있다면 다시 자라는 것은 순식간이다. 자라는 속도도 빨라 여름에는 하루에 30cm씩 길어질 정도다. 덩굴 안쪽에 뱀이나 벌이 사는 경우도 많아 뜯어내려고 다가갔던 사람들이 해를 입는 경우도 잦다.

암꽃과 수꽃이 한 줄기에서 피는 이 식물은 번식도 왕성해 가시박 한 그루가 1년에 2만5000여 개의 씨를 만든다. 이 씨는 강을 타고 퍼지거나 자동차, 열차 등에 묻어 다른 지역으로 퍼진다. 환경이 자라기에 좋지 않으면 최대 60년까지 씨앗 형태로 살면서 생장하기 좋은 환경을 기다리기도 한다.

○ 정부-민간단체가 손잡고 제거

가시박처럼 외국에서 들어와 한국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주는 생태계교란식물은 단풍잎돼지풀, 서양금혼초 등 총 11종류가 있다. 단풍잎돼지풀은 1.5∼2m까지 자라 특히 밭에 떨어질 경우 키우는 식물이 햇빛을 보지 못해 죽게 만드는 유해식물이다. 7, 8월에는 사방에 꽃가루를 날려 알레르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바람을 타고 씨를 퍼뜨리는 등 특성과 모양이 민들레와 비슷하게 생긴 서양금혼초는 한라산, 변산반도, 지리산, 덕유산 무주구천동 등 국립공원의 식물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생태계교란종 제거는 각 지방자치단체와 각 지역 환경청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번식력과 생존력은 강한 반면 일일이 사람이 걷어내야 하는 특성상 제거 속도가 느려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민간단체인 사단법인야생동식물관리협회에 올해 총 6500만 원의 예산을 지원해 생태계교란식물을 공동으로 제거하고 있다. 또 일반 시민과 주변 지역 생태계교란식물을 뽑아내는 행사인 ‘생태계교란종제거행사’도 2일 연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