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토플주제/마틴 루서 킹 주니어

  • 입력 2009년 8월 31일 02시 59분


마틴 루서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I have a dream…” 비폭력으로 평화의 꿈 이루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는 미국의 침례교 목사(Baptist minister)로 1950∼1960년대 미국 내 흑인인권운동을 이끈 인물이었다. 그는 사회변화를 달성할 수단으로 비폭력을 내세웠던 지도자이자, 미국의 위대한 연설자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킹 목사는 1929년 1월 15일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Atlanta)에서 태어나 후에 보스턴대에서 공부했다. 그는 1953년 지적이고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젊은 여성인 코레타 스콧(Coretta Scott)과 결혼했고, 그 다음해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Montgomery)에서 목사직을 맡게 되었다.

1955년 12월 5일 흑인인권운동가였던 로자 파크스(Rosa Parks)는 시내버스 안에서 ‘백인 전용’ 칸에 앉은 채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을 거부했다. 대중교통 수단에서의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한 것이다. 당시 몽고메리에서는 흑인이 버스 앞 네 줄까지의 좌석에 앉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킹 목사는 몽고메리 대중교통의 인종차별정책(Montgomery's policy of segregation on public transportation)에 반대하면서 흑인 보이콧 운동(black boycott against Montgomery's buses)을 이끌었다. 382일 동안 계속된 이 운동은 버스회사의 규정에 변화를 가지고 올 만큼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킹 목사는 이 운동을 하는 동안 체포를 당하고 집에 폭탄이 터지는 등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그는 이런 시련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비폭력 저항운동(nonviolent protests)을 주도했고 인종차별(racial discrimination)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다.

1956년 12월 미국대법원(the U.S. Supreme Court)은 마침내 인종차별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킹 목사는 1957년 다른 흑인목사들과 함께 오늘날 남부 그리스도교 지도회의(the 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SCLC)로 알려져 있는 조직을 설립했다. 킹 목사는 이 단체의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다른 공동체들이 차별반대 저항운동(protests against discrimination)을 조직하도록 도왔다.

1959년 킹 목사는 인도를 방문해서 간디의 평화적인 설득 원칙인 사타그라하 운동 (Satyagraha·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더 깊게 이해했다. 이것이 사회에 저항하는 그만의 주된 방식이 됐다.

1963년 8월 28일 킹 목사는 흑인의 투표권(Blacks' right to vote), 인종차별 폐지(desegregation), 공평한 노동권(fair labor rights) 등을 위해 워싱턴의 평화행진(the peaceful march on Washington D.C.)을 지휘했다. 킹 목사는 이 행진에 참가한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을 했다. 연설문에서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언젠가는 피부색이 아닌 그들의 인격만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기를 바란다(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라는 말을 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유, 평등,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이 연설로 미국 전역에 잘 알려지게 됐다.

킹 목사의 저항방법은 큰 찬사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흑인지도자들과 갈등을 빚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와 동시대에 활동한 흑인운동가이던 맬컴 X(Malcolm X)는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때로는 폭력이 필요하고 백인들의 학대(white persecution)에 고통 받는 흑인들은 독립된 나라(separate nation)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사회변화(social change by any means necessary)를 요구했다. 이 메시지는 특히 북부 도시지역의 흑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킹 목사가 미국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는 1964년 민권법(the Civil Rights Act of 1964), 1965년 투표권법(the Voting Rights Act of 1965)이 만들어지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1964년의 민권법은 호텔, 식당, 극장 등 공공장소에서의 인종분리 등 차별을 금했다. 나아가 모든 인종이 평등하게 대우를 받을 권리를 약속했다. 킹 목사는 또한 흑인시민들이 투표인단에 등록할 수 있도록 돕는 캠페인을 펼쳐 1965년 투표권법 제정으로 이어지게 했다. 이 법은 흑인 유권자들이 더 이상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그는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1964년 노벨평화상(the Nobel Peace Prize)을 수상했다.

1977년 킹 목사의 사후에 그에게 자유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이 수여됐다. 오늘날 그는 미국 인권운동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그의 생일은 미국 국경일로 지켜지고 있다.

▶지난 기사와 자세한 설명은 easynonsul.com

김현옥 영재사관학원 예스영어사관 평촌본원 초등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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