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의료봉사로 ‘仁術의 꿈’ 키웠죠”

  • 입력 2009년 7월 7일 02시 57분


■ 30여년전 한국서 美평화봉사단원 활동 버너뎃 레버씨

“환자들 주는 음식 흔쾌히 먹어…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사람”
재회한 당시 간호사들 회고

“좌식생활을 어려워하던 서양 아가씨가 한센병 환자들을 돕겠다고 와서 ‘신기하다’고 봤었는데 이제 어엿한 의사 선생님이네.” “그럼. 나 이래봬도 소아과 겸 내과 전문의로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다 치료해.”

6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미국 평화봉사단원 방한초청 환영 오찬. 유난히 시끄러운 한 테이블에 세 여성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1970년대에 경북 영일군 보건소(현 포항시 북구보건소)에서 동고동락하며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던 버너뎃 레버 씨(한국명 이인경·56)와 이명희(55), 권인숙 씨(54). 레버 씨가 4년 전 한국을 찾았을 때 이 씨를 만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30여 년 만이었다. 세월을 건너 중년 여성이 된 세 사람은 마치 자매처럼 두 손을 서로 맞잡고 서툰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추억을 떠올렸다.

금발머리, 파란 눈의 스물세 살 레버 씨가 한국에 온 것은 대학 3학년을 마친 1976년. 생물학 전공을 마치고 의과대학원 입학을 준비해야 할 참이었지만 바로 대학원에 가기보다는 세상을 넓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지원한 것이 미국 평화봉사단. 대부분 영어선생님 자리였지만 그는 전공을 살려 의료봉사를 선택했다.

“주변에서는 위험할 것이라며 말리기도 했지만 전공이 생물학이었고 또 의과대학원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환자들을 만나고픈 욕심이 있었죠. 사실 한센병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그래서 더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도 있었고요.”

그가 배치된 영일군 보건소 주변에는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각각 관리하는 2개 정착촌에 한센병 환자 10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의술이 크게 발달하지 않아 손가락이 문드러지고 얼굴이 상한 환자가 많았지만 그는 특유의 환한 미소로 부지런히 환자들을 돌봤다.

“어떨 때는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 같았죠.” 보건소에서 함께 근무했던 이 씨와 권 씨는 당시의 레버 씨를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한센병 같은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의 눈 때문에 보건소에 약을 타러 나오는 것도 일이거든요. 그런 환자들을 위해 일일이 집을 찾아다니며 약을 건네고 환자들 말동무도 해줬어요. 솔직히 한국 의사들도 환자들이 주는 음식은 편견 때문에 잘 안 먹는데 전혀 거리낌 없이 달걀 같은 것도 얼마나 잘 받아먹었다고요.”

젊은 여성의 몸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며 두렵지는 않았을까. 그의 대답은 ‘아니요’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글쎄요. 저는 한센병 전염확률보다 TV의 중독성이 더 무섭던데 그렇지 않나요?”

한센병의 특성상 환자들의 발병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늘 조심해야 했고, 외국인이다 보니 환자들이 집에 들이길 내켜하지 않는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는 영일군 보건소에서의 2년이 자신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절이라고 힘줘 말했다.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죠. 인숙이와 함께 영어공부를 하고 명희랑 근처 모연산에 놀러가 폭포 등을 둘러보고 밤새 수다를 떨었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그러던 레버 씨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1999년 먼저 세상을 떠나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보건소 동료 신영찬 씨가 생각나서다.

“내일 포항에 가면 영찬 씨 가족이라도 만나보려고요.” 영찬 씨의 이름을 직접 수첩에 한글로 적던 레버 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옆에 있던 이 씨와 권 씨는 “먼 곳까지 와서 고생만 하고 별로 잘해준 것도 없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레버 씨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한국에 와서 오히려 얻은 게 많아요. 한국에 와서 한센병 환자들을 만나면서 의사가 돼야겠다는 꿈이 더 강해졌거든요. 만약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의과대학원에 갔다면 의사가 됐을지언정 지금과 같은 눈으로 환자를 보지는 못했을 거예요.”

평화봉사단 활동을 마치고 미국에서 의과대학원을 졸업한 뒤 이제는 소아과·내과 전문의로 보스턴의 지역보건소 헬스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레버 씨. 한국과의 인연을, 친구들과의 인연을 죽는 날까지 이어가겠다는 그는 다시 밝은 목소리로 친구들과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오늘 오후에는 인사동에 가볼까? 포항에 가서는 한센병 환자들 정착촌도 다시 둘러보고 싶어.”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임성준)의 초청으로 5일 한국을 다시 찾은 레버 씨 등 미 평화봉사단원과 가족 57명은 7∼9일 젊은 시절의 땀이 배어 있는 봉사활동 현장을 방문한 뒤 11일 돌아간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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