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진 한반도 ‘철새지도’ 새로 그린다

  • 입력 2009년 6월 10일 02시 51분


평균기온 96년새 1.7도↑… 여름철새 겨울돼도 안 떠나
“국내 조류 350종 가운데 64종이 최근 40년 동안 사라져”

붉은부리찌르레기는 중국 남부와 필리핀, 일본 등에 서식하는 철새로 중국 특산종으로 불린다. 이 새는 2000년 인천 강화도에서 처음 발견됐다. 2006년 이후 개체수가 크게 늘어났고 2007년 6월 제주 제주시 한림읍과 경기 파주시 탄현면에서 번식하는 것이 확인됐다. 지난해 6월 부산 강서구청 인근에서 50여 쌍이 집단으로 서식하는 것도 발견됐다.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 최창용 박사는 “기온 상승의 영향으로 꽃이 빨리 피고 먹이곤충이 먼저 출현해 포식자인 철새도 이에 적응하는 것”이라며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조류는 번식을 제대로 하지 못해 개체군 감소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한반도의 철새지도를 바꾸고 있다. 지난달 기상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1912∼2008년 96년간 1.7도 올랐다. 평균 기온이 오르자 철새도 이동속도와 서식지를 바꿨다. 동남아에 서식하는 아열대 조류가 국내에 체류하기 시작했고 여름 철새가 겨울에 남부지방으로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는 ‘텃새화’ 현상도 포착됐다. 일부 새는 한반도에서 사라졌다.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에 따르면 2000∼2008년 국내에 새롭게 들어온 조류는 69종에 달한다. 참새목이 59%로 가장 많았고, 도요목 18%, 매목 10%, 두견이목 4%, 기러기목 3% 등이다. 33종(48%)은 태풍 등 기상에 의해, 31종(45%)은 서식 지역 확대 및 지구 온난화에 의해 국내에 출현한 것으로 분석됐다.

여름 철새의 경우 서식지가 북쪽으로 확대되고 겨울 철새나 나그네새의 이동 패턴도 눈에 띄게 바뀌었다. ‘따뜻한 겨울’은 여름 철새의 텃새화를 이끌기도 한다. 호남대 이두표 교수팀이 2003∼2006년 매년 12월 한 달 동안 영산강(담양습지∼나주대교) 주변에서 월동하는 백로과 여름 철새 개체수를 조사한 결과 2003년 55마리에 불과했으나 2004년 152마리로 늘었고 2006년에도 149마리가 발견됐다. 뿔논병아리 등 겨울철새는 4, 5년 전부터 봄이 찾아와도 북쪽으로 떠나지 않는다. 팔당호와 시화호 인근에는 봄에도 뿔논병아리를 쉽게 볼 수 있다. 봄가을에 한반도를 통과하던 나그네새인 장다리물떼새와 물닭, 호사도요, 흰물떼새 등도 북쪽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그 대신 충남 서산과 천수만, 안산 시화호 등에 서식하며 여름철 번식활동을 한다.

윤무부 경희대 생물학과 명예교수는 “새는 환경에 가장 민감한 동물 가운데 하나”라면서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으로 40년 동안 국내에서 살던 350종의 조류 중 64종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철새의 이동속도도 바뀌었다.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가 2006∼2007년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를 거쳐 가는 봄철 철새 84종을 조사한 결과 제비, 칼새, 휘파람새 등 13종의 최초 이동시기가 6∼36일 빨라졌다. 홍도와 중국 동남부 지역 3곳(상하이 푸저우 홍콩)의 평균 최저기온은 2006년에 비해 2007년에 0.5∼2도 올랐다. 철새 이동속도의 변화는 유럽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박희천 경북대 생물학과 교수는 “기후변화에 따른 철새의 이동거리, 서식지 등의 변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그만큼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고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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