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사교육의 천적은 교사다

  • 입력 2009년 6월 9일 20시 57분


대통령까지 나서서 교육 경쟁력 끌어올리기에 한창인 미국에서 새로운 실험이 시도돼 화제다. 내년 9월 미국 뉴욕의 빈민가에서 개교하는 차터스쿨 ‘에퀴티 프로젝트(The Equity Project)’는 학생들의 학력 신장에 교사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32세의 예일대 졸업생이 교장인 이 학교는 미 전역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8명의 교사를 채용했다. 교사들의 연봉은 미국 교사 평균 연봉의 2.5배인 1억5000만 원 정도다. 3000만 원의 성과급도 주어진다. 그 대신 일반 교사들과는 달리 아무 때나 해고될 수 있고 퇴직수당도 받을 수 없다.

이들 최고의 교사가 가르칠 학생들은 미국 평균에 한참 미달인 학생들이다. 지원자 중 추첨으로 선발된 학생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의 히스패닉계로 학교 성적은 최하위권이다. 1년 뒤 학생들의 성적이 어떻게 변할지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계에도 관심거리다.

기사를 읽고 난 뒤 고교시절 수학 선생님 한 분이 떠올랐다. 그 선생님의 교과서 안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페이지 여백마다 직접 문제 풀이 방식을 빨간색 볼펜으로 써놓았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선생님이 책에 써놓은 풀이 방식을 칠판에 그대로 옮겨 적었는데 풀이가 그만 틀려버렸다. 선생님은 책과 칠판을 번갈아 보며 잘못 옮겨 적은 부분을 찾았으나 잘못된 부분은 없었다. 문제는 자습서였다. 선생님이 교과서에 풀이 방식을 옮겨 적기 위해 ‘교본’으로 이용한 자습서가 틀린 것이었다.

지금 같으면 학원에 가 당장 보충수업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과외가 금지됐던 때였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매 학년 초 그 선생님이 걸리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뿐이었다.

지난주 교육과학기술부는 사교육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실세 차관이라는 이주호 교과부 차관이 부임한 이후 3개월 이상 공들여 마련한 대책이었다. 하지만 정작 학원가는 떨기는커녕 ‘잘되겠냐’는 식의 냉소적 반응 일색이다. 이전 대책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최근 만난 한 대형 학원 관계자는 “학교 교사들이 학원 강사보다 더 열심히 가르치면 어느 학부모가 비싼 돈 내고 학원을 보내겠냐”고 말했다. 사교육 대책의 해법을 교사 경쟁력 끌어올리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제는 유명 인사가 된 미셸 리 워싱턴 교육감까지 갈 필요도 없다. 당장 국내 대학만 보자.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은 경쟁력 무풍지대였다. 10년도 넘은 강의노트가 그 상징이었다. 물론 지금도 기업들은 대학의 경쟁력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만 봐도 대학은 변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교수 괴롭히기(?)’의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재임용 심사 강화, 강의평가제 실시, 논문 발표 강화 등으로 키운 교수 경쟁력이 대학 변화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공교육 강화에 대한 답도 다르지 않다. 교사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교원평가제는 그 핵심이다. 내년부터 교원평가제를 도입하려는 교과부의 계획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 교수들도 받고 있는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이유를 대도 궁색할 따름이다. 교원평가제 법안은 현재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현두 교육생활부 차장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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