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리와 사고]정의의 5원칙

  • 입력 2009년 5월 25일 02시 52분


개념정의의 생명은 중립-객관… 나만의 느낌은 배제!

글을 쓸 땐 도입부에서 논의의 초점이 되는 주요 개념을 미리 정의해야 합니다. 그래야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이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이때 글을 쓰는 사람은 논의 대상인 특정 개념을 가능한 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정의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낙태에 대한 논쟁을 예로 들어 봅시다.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는 사람은 낙태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인간에 대한 살인’으로 정의합니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면 낙태가 나쁘다는 논증을 펼치기 유리해져 손쉽게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또 체벌에 대한 논쟁을 하면서 체벌을 ‘학생에 대한 교사의 폭력행위’라고 정의하면 논쟁의 결과는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셈입니다.

이렇게 한쪽 의견으로 치우친 정의를 ‘설득적 정의’라고 합니다. 설득적 정의는 개념의 뜻을 명료히 하기보다는 그 개념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전달하거나 상대방의 태도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확실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독자가 어떤 문제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느끼도록 설득하고 싶을 때 설득적 정의를 활용합니다.

설득적 정의를 사용하면 개념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진보적 교육’을 ‘부모가 아이를 버릇없이 구는 응석받이로 키우는 교육’으로 정의한다고 합시다. 이는 진보적 교육이 빚어내는 부작용을 지적한 주장으로는 성립할 수 있지만 진보적 교육의 의미를 제대로 밝혔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논의에 앞서 주요 개념을 정의할 때는 그 뜻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정의해야 합니다. 논쟁 당사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도록 정의를 내려야 공정한 논의가 보장됩니다.

정의를 객관적으로 내리려면 정서적(emotional) 의미가 강한 말은 정의 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정서적 의미란 그 말이 나타내거나 일으키는 느낌, 태도 또는 감정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어떤 말의 정서적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완전히 이를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부인’이라는 말과 ‘여편네’라는 말은 같은 대상을 가리키지만 느낌은 전혀 다릅니다. ‘보수주의자’라는 용어는 어떤 사람에게는 칭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비난일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정의를 내리려면 정서적 의미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더라도 가능하면 정서적 의미가 약한 말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제대로 정의를 내리기 위해선 일반적으로 다음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 정의를 내리는 범위가 좁아서는 안 됩니다. 개념을 너무 좁은 범위에서 정의 내리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내용이 배제돼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네 개의 바퀴와 내연기관을 가진 육상 운송 수단’이라고 정의하면 삼륜자동차나 이륜자동차가 배제되므로 잘못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정의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도 안 됩니다. 넓게 정의하면 포함되지 말아야 할 대상까지 포함돼 혼란을 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칼’을 ‘자르는 도구’라고 정의하면 잘못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자르는 도구에는 칼 외에 톱이나 도끼 같은 다른 많은 물건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넓은 정의는 논의의 초점을 분명하게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쓸모없는 정의가 되고 맙니다.

셋째,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정의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파트타임 직원’을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해 봅시다. ‘파트타임 직원’에 대해 의미 있는 정보를 전혀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정의 역시 쓸모없는 정의가 되고 맙니다.

넷째, 정의는 명료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등생을 ‘공부 잘하고 모범이 되는 학생’이라고 정의해 봅시다. 이 기준으로 우등생을 선발할 수 있을까요?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모범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내용이 모호하기 때문에 정의로서는 가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조건을 명시해 주어야 명료한 정의가 됩니다. 공부를 잘하는 기준을 구체적인 점수로 명시하거나 모범이 되는 기준을 ‘일정 시간 이상의 봉사 시간’ 혹은 ‘선생님 몇 분 이상의 추천’ 등으로 구체화한다면 정의가 명료해집니다.

다섯째, 정의를 부정문으로 제시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좋은 정의로 평가받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무엇이다’라는 적극적, 긍정적 정의가 가능함에도 ‘무엇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해당되지 않는 요소만 언급한다면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용기’를 ‘적을 보고 도망치지 않는 것’이라거나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면, 용기의 한 측면만 부각돼 전체적인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글을 쓸 땐 이런 원칙을 눈여겨보면서 주요 개념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정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 의사소통교육센터장

▼정의의 5원칙▼

[1] 범위 너무 좁으면 안 되고

자동차=네 바퀴 가진 운송수단?

[2] 너무 넓게 잡아도 곤란

칼=자르는 도구?

[3] 같은 말 반복은 피하고

파트타임 직원=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

[4] 명료한 내용 전달하고

우등생=공부 잘하고 모범되는 학생?

[5] ‘무엇이 아니다’보다 ‘무엇이다’

용기=적을 보고 도망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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