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인재 찾자는 건 내 30년 신념”

  • 입력 2009년 5월 13일 02시 54분


건설부장관-한은총재 지낸 박승 씨, KAIST 입학사정관으로


교육은 못다핀 꽃 피우는 일… 출세교육보다 시민교육 필요
현직 떠나 활동 자제했지만 미래인재 발굴엔 소명의식

“교육은 미처 피지 못한 꽃이 만개하게 하는 겁니다. 창의성과 잠재력 있는 인재를 뽑아 국가의 미래경쟁력을 높이겠다는데 교육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73·대통령자문 국민원로회의 위원·사진)가 2010학년도 KAIST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한다. KAIST는 12일 박 전 총재가 입학사정관 제의를 최종 수락했다고 밝혔다. 중앙대 교수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건설부 장관, 한은 총재 등을 지낸 그의 입학사정관 활동은 이 제도의 정착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박 전 총재는 “현직을 떠나 현실에는 개입하지 않으려 했고, 그래서 현 정부의 원로회의 위원 제의도 여러 번 사양하다 받아들였다”며 “하지만 국가의 미래 인재를 발굴하는 교육의 문제여서 소명의식이 발동했다”고 수락 배경을 밝혔다.

KAIST는 최근 학교에서 리더십 특강을 마친 박 전 총재가 “KAIST 입시개혁에 공감한다”고 하자 “그럼 입학사정관을 맡아 달라”고 제의했다. KAIST는 모집정원 920명 중 150명은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일반고 학생으로 뽑겠다는 입시개혁안을 발표한 바 있다.

박 전 총재는 “30년 전부터 잠재능력을 보고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글을 동아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에 써왔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여러 차례 건의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달달 외는 주입식 교육과 비싼 과외를 받아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를 잘 딴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현행 체제로는 훌륭한 인재를 발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능 위주 선발의 문제점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잠재능력과 창의력을 측정할 수 없어요. 암기식 사교육으로 쌓은 능력만을 알 수 있죠. 또 진실성과 충직성, 협동성, 봉사정신, 활동성, 리더십 등으로 표현되는 인품에 대한 평가는 어렵습니다.”

박 전 총재는 “수능보다는 내신이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 더 영향을 미친다는 게 대학들의 일치된 연구 결과”라며 “내가 총장이라면 수능은 20%, 나머지는 내신과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심층면접으로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점수 위주의 선발이 가져온 폐해를 경제학자답게 정리했다. “교육은 사회의 대표적인 공공재(公共財)인데 우리는 개인 문제를 해결하는 ‘개인재’로 착각해 왔어요. 그래서 돈 벌면 교육세를 내거나 대학에 기부하지 않고 사교육에 투입해 자녀가 수능 잘 봐 명문대 거쳐 판사나 의사가 돼 결혼 잘하고 호의호식하길 바라지요.”

박 전 총재는 “이런 ‘출세 교육’보다는 질서를 존중하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 정진하며 사회에 봉사하고 협동하는 인재를 만드는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며 “가정형편이 어렵지만 잠재능력이 있는 인재도 지역할당제 등을 통해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총재는 “고교는 내신과 자기추천서, 학교장추천서 등 학생 자료를 충실히 준비하고 대학은 능력 있는 입학사정관을 발굴하고 심층면접 등 잠재력 측정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며 “초기의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우리는 적응력이 빠르기 때문에 잘 준비하면 2, 3년 안에 입학사정관제가 정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 입학사정관은 20∼30명으로 구성된다. 전임 사정관 7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교내 교수이며 외부 인사는 박 전 총재를 포함해 3명이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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