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외국인 관광안내 나선 은발의 ‘지역가이드’

  • 입력 2009년 5월 12일 03시 03분


“은퇴 후 처음으로 보람을 느끼는 일을 찾았다”는 양인석 씨(오른쪽)와 김영채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0일 서울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가이드 통역을 하고 있다. 종로구와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어르신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시작된 ‘지역가이드 통역’을 지속적으로 선발할 계획이다. 김미옥 기자
“은퇴 후 처음으로 보람을 느끼는 일을 찾았다”는 양인석 씨(오른쪽)와 김영채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0일 서울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가이드 통역을 하고 있다. 종로구와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어르신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시작된 ‘지역가이드 통역’을 지속적으로 선발할 계획이다. 김미옥 기자
“노인들 유창한 영어해설 감동”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에서 만난 양인석 씨(68)는 유창한 영어로 “운현궁은 고종이 어릴 적 머물던 곳이며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자택”이라고 운현궁을 설명했다. 양 씨는 30여 년 동안 해외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다. 그는 “중동에서 모래바람과 싸우며 30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은퇴할 때가 됐다”고 했다.

양 씨는 지난달 말 종로구와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손잡고 시작한 ‘지역가이드 통역 1기’에 선발됐다. 지역가이드 통역은 어르신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노인들을 선발해 외국인 관광 안내 가이드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지역가이드 통역 모집에는 4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고 이들 가운데 필기시험, 면접, 실전테스트 등의 과정을 거친 3명만이 합격했다. 외국어를 잘하는 지원자는 많았지만 정작 전통문화에 대한 기본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일본어는 아무도 선발되지 못한 것. 양 씨와 함께 선발된 채수장 씨(61)는 20여 년 동안 호텔맨으로 일하며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한 경험을 높게 평가받았다. 김영채 씨(74)는 3명 가운데 최고령자로 오랫동안 작가로 일해왔다. 이들 3명은 국사학과 교수, 동시통역사 등으로부터 강도 높은 가이드 교육을 받은 뒤 이날 마지막 실습을 위해 운현궁을 찾은 것이다.

마지막 실습을 점검한 동국대 그레고리 브룩 교수는 “노인들이라 영어가 서툴 줄 알았는데 굉장히 유창하게 구사한다”면서 “특히 한국의 기와 문양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 훌륭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브룩 교수의 칭찬과 달리 마지막 실습을 마친 세 사람은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고 입을 모았다. 김 씨는 “나름대로 전통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공부를 더 열심히 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우리 문화에 대해 완벽하게 해설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월 20시간 근무하며 10만 원의 기본 보수를 받고, 20시간 외에 1팀을 안내할 때마다 1만∼1만5000원 정도를 추가로 받는다. “보수가 다소 적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들은 “단순히 돈만 바라보고 가이드에 지원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김 씨는 “다른 일을 한다면 이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도 있다”면서도 “사회생활의 경험과 전통문화에 대한 지식을 살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북촌, 운현궁, 인사동을 다룬 신문기사를 모은 스크랩북이 벌써 3권에 달한다는 채 씨 역시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살릴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실습교육을 마친 이들은 14일 처음으로 가이드로 실전에 투입된다.

종로구와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지역가이드 통역을 지속적으로 선발할 계획이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송화진 인력개발과장은 “2기 10여 명에 대한 지원 접수를 5월 말까지 한다”며 “의사소통이 가능한 외국어 실력과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의 서울노인복지센터 인력개발과(02-6911-9582)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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