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사기, 몽골 양치기도 울렸다

  • 입력 2009년 4월 30일 02시 57분


한국-몽골 브로커, 유령회사 차려 681명에 20억 뜯어
현지 교민 “반한 감정 심각”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인근 초원에서 양을 기르던 A 씨(35)는 2007년 12월 몽골인 브로커 B 씨에게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한국의 충남 태안 기름 유출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한국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돈만 주면 한국에서 발행한 봉사활동 인증서도 구해줄 수 있다고 했다. 브로커가 제시한 비용은 2000달러. 몽골 노동자 평균 임금의 2년 반치 액수였다. 일단 한국에 들어가면 몇 달 만에 그 정도는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친척과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B 씨에게 송금했다.

몽골 제2의 도시 셀렝게의 노동자 C 씨는 지난해 1월 B 씨를 만나 한국 H토건, S전자 등 50여 개 회사의 취업 초청장을 볼 수 있었다. B 씨는 “한국에서 내게 보낸 초청장이다. 취업이 확정됐다는 뜻이다. 여기서 가고 싶은 회사만 고르면 된다”고 했다. 대신 2000달러를 요구했다. 역시 빚을 얻어 B 씨에게 송금했다. B 씨는 받은 돈을 한국의 브로커에게 보냈다.

몽골과 한국 브로커가 2007년 12월부터 1년간 벌인 취업 사기사건으로 몽골인 681명이 140만 달러(약 20억 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몽골 현지에서 반한 감정이 고조되는 등 부작용도 낳고 있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29일 몽골 브로커와 짜고 위조한 가짜 초청장을 보내는 수법으로 거액을 가로챈 혐의(공문서 위조 등)로 이모 씨(46) 등 3명을 구속하고 최모 씨(50) 등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 씨 등은 2007년 8월 울란바토르 시내에 ‘아시안 국교펀드’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말이 시민단체지 취업자를 모집하기 위한 유령회사였다. 회사 문을 닫았지만 해산신고를 하지 않은 국내 24개 법인 인감증명서와 사업자등록증 등을 채무자에게서 구입한 뒤 노숙자 11명 명의로 위조했다. 파산 법인이 별도의 해산신고를 하지 않으면 유령법인으로 남아 있는 점을 악용한 것. 이 회사 명의로 몽골 일간지에 ‘한국에서 기술을 익히고 취직을 보장한다’는 광고를 냈다. 몽골 현지 사정에 정통한 브로커 3명도 고용했다. 여기에는 몽골 전직 국회의원 D 씨(42·여)도 포함됐다. 인지도가 높은 D 씨를 내세우면 구직자들이 쉽게 몰릴 것으로 판단했다. 사기를 당한 몽골인들은 20∼50대로 대부분 가난한 농민이나 서민이었다.

이 취업사기 사건은 몽골에서 사회문제로 불거져 현지 언론에 계속 보도되고 있다. 한 일간지는 “몽골과 한국 사람이 짜고 우리 국민을 속였다. 피해자들은 가산을 탕진하고 이혼을 하는 등 국내에서 알거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피해자 A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친척들에게 빌려 마련한 돈을 다 날렸다. 한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몽골 현지 경찰도 최근 특별수사팀을 꾸려 브로커 3명과 한국인 연락책 1명을 구속했다. 울란바토르 교민 김윤종 씨(59)는 “일부 몽골인들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돌을 던지거나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등 이번 사건으로 반한감정이 심각해졌다”고 전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