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잠귀신아, 제발 좀 저리 가∼”

  • 입력 2009년 4월 28일 02시 55분


시험기간 캔커피 4, 5개 벌컥… 눈가에 물파스… 처절한 ‘배틀’

경기도의 한 외국어고등학교 고 3 교실. 오전 7시 25분 학교에 도착한 김모 군(18)이 민첩하게 책상을 옮긴다. 책상 세 개를 가로로 이어 붙였다. 딱 한 사람이 누울 만한 ‘즉석침대’가 마련됐다. 곧이어 김 군은 사물함에서 ‘침구세트’를 꺼냈다. 라벤더향(아로마 요법에 이용되는 향으로 정신안정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이 폴폴 나는 베개를 베고 담요를 덮은 김 군은 금세 짧은 잠에 빠져들었다. 김 군의 잠은 학급조회가 시작되는 오전 7시 40분 직전까지 15분 남짓 이어진다.

같은 반 정모 양(18)은 “고 3이 되고부터는 늘 잠이 모자라 푹 자도 개운하지가 않다”면서 “수업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학생이 조회 전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둔다”고 말했다. 정 양이 말하는 집중의 척도는 ‘수업시간에 시계를 몇 번 보는가’. 학교에 늦게 오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느라 쪽잠을 못 이룬 날이면 수업시간 중 10분에 한 번꼴로 시계를 보지만, 쪽잠을 자고 나면 1시간 수업시간이 금방 간다고 했다. “컨디션이 좋으면 수학 문제를 푸는 속도도 1.5배 빨라진다”는 정 양.

잠깐이라도 제대로 자고픈 수험생들의 고단한 현실은 독특한 ‘수면사업’과 ‘수면문화’를 탄생시켰다. 쪽잠용 베개만 해도 동물 모양 베개부터 아로마향이 나는 베개까지 다양. 값은 종류별로 1만∼2만 원을 웃돈다. 1만원이 채 안 되는 담요까지 마련하면 용돈은 빠듯하지만, 고 3에겐 필수품. 최근 선생님이 “교실이 안방이냐”며 침구세트 사용 금지령을 내린 이후엔 30% 남짓한 학생만 이용한다.

서울 목동에서 스쿨버스로 경기도에 있는 학교까지 1시간 거리를 통학하는 고 3 이모 양(18)은 ‘스쿨버스 취침 명당’을 소개했다. 20인승인 스쿨버스는 자리가 부족하면 보조의자를 펴서 앉아야 한다. 이 양은 “보조좌석에는 목 받침이 없어서 편하게 잘 수가 없기 때문에 무조건 구석진 창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며 “시끄러운 1, 2학년 애들은 수면에 방해가 되므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시험기간엔 어떨까? 쪽잠조차 포기한 채 학생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잠을 줄인다.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캔커피나 비타민 음료를 마시는 것. 하루에 캔커피를 4, 5개씩 마신다는 이 양은 “어떤 외고 애들은 시험기간에 카페인이 든 음료를 몇 상자씩 비축해두고 먹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국어책만 펼치면 잠이 온다는 고등학생 박모 군(17·서울 서초구 양재동). 그는 약국에서 판매하는 ‘잠 깨는 껌’을 애용한다. 씹는 순간 강렬한 민트향이 정신을 바짝 들게 한다. 신맛이 나는 비타민C 정, 입안을 시원하게 해주는 민트향 사탕도 즐겨 먹는다. 박 군은 “이런 방법은 순간적으론 잠이 깨지만 오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각성 제품을 인터넷으로 구입해 사용하기도 한다. 정 양은 “딱풀처럼 생긴 잠 깨는 물건을 사용하는 학생도 있다”면서 “졸릴 때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거나 눈 옆 관자놀이에 바르면 코가 확 뚫리고 눈이 밝아지면서 잠이 달아나는 효과가 있다”고 귀띔했다. 몇몇 학생은 ‘물파스’의 냄새를 맡거나 이를 얼굴에 바르기도 한다.

시험기간 학생들 사이엔 ‘잠 안 자기 문자 배틀(battle)’도 벌어진다. 자정이 지나면 친구와 30분 간격으로 서로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 ‘자?’라는 질문에 ‘아니’라는 답이 오면 30분 후에 다시 문자를 보낸다. 다시 문자를 보냈을 때 답이 오지 않으면 잠이 든 것으로 간주하고 내기는 종료된다. 먼저 잠이 든 친구는 다음 날 학교 매점에서 간식을 ‘쏜다’. “어차피 공부를 위한 건데 문자 배틀을 하기보단 서로 전화를 해주면서 잠을 깨워주는 게 더 아름답지 않을까?”란 질문에 박 군은 말했다.

“알고 보면 경쟁자인데 왜 깨워줘요? 배틀의 취지는 함께 공부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언제 자는지 확인하면서 내가 더 오래 버티려고 하는 데 있잖아요?”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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