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리와 사고]모순? 반대? 대립하는 두 주장의…

  • 입력 2009년 4월 27일 02시 58분


두 주장이 모순일 땐 상대 주장 틀렸음을 증명해야

두 주장이 반대 관계일 땐 내 주장이 옳음을 입증해야

논술은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글입니다. 논술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듯 보이는 주장들이 서로 대립 관계에 있는지 파악하고, 실제 각각의 주장들이 대립할 경우 그 대립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서로 대립하는 주장이란 어떤 것일까요? 두 주장 사이에 합일점을 찾을 수 없을 때 각각의 주장은 대립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이 소시지는 돼지고기 함량이 적어도 70%이다’란 주장과 ‘이 소시지는 돼지고기 함량이 적어도 60%이다’란 주장은 서로 대립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소시지의 돼지고기 함량이 최소한 60% 이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예를 살펴봅시다. ‘이 소시지는 돼지고기 함량이 적어도 70%이다’와 ‘이 소시지는 돼지고기 함량이 많아야 70%이다’는 주장은 언뜻 보면 대립하는 것 같지만 실은 대립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소시지의 돼지고기 함량이 70%일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위의 각 주장은 서로 일치합니다. 이처럼 두 주장이 동시에 참일 수 있으면 두 주장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달리 말해 두 주장이 동시에 참일 수 없을 때 두 주장은 대립하는 것입니다.

주장이 대립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입니다. 대립하는 두 주장은 서로 모순 관계일 수도 있고 서로 반대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이 소시지의 돼지고기 함량은 적어도 70%이다’와 ‘이 소시지의 돼지고기 함량은 70%가 안 된다’는 두 주장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우선 동시에 참일 수는 없기 때문에 대립하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두 주장은 동시에 거짓일 수도 없습니다. 하나가 참이면 반드시 다른 하나는 거짓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두 주장이 동시에 참일 수 없으며 동시에 거짓일 수도 없을 때, 달리 말해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거짓일 경우엔 서로 모순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이 소시지는 완전히 돼지고기로 만들어졌다’와 ‘이 소시지는 돼지고기를 전혀 함유하고 있지 않다’는 두 주장은 동시에 참일 수 없으므로 대립하는 주장입니다. 반면 두 주장은 동시에 거짓일 수 있습니다.

소시지에 돼지고기가 포함되어 있으면서 그 함량이 100%가 아니라면 둘 다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두 주장이 동시에 참일 수는 없지만 둘 다 거짓일 가능성이 있을 때 두 주장은 반대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상대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시하면서 내 주장을 옹호할 경우 현재 대립하는 두 주장의 관계가 모순인지 반대인지를 구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 반론의 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두 주장의 관계가 모순일 경우 상대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하면 그것이 바로 내가 옳음을 입증하는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일 경우에는 그것만으로는 내 주장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으므로 내가 옳다는 직접적인 근거를 반드시 따로 제시해야 합니다.

두 주장이나 개념의 관계가 모순인지 반대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또 관점에 따라 두 관계가 모두 성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착하다(선)’와 ‘나쁘다(악)’의 관계를 예로 들어 봅시다.

어려운 처지의 거지가 우리에게 구걸하는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이때 그 거지를 도와준다면 착한 행위를 하는 것이겠지요.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거지가 동냥으로 모은 돈을 뺏는다면 나쁜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외면한 경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두 개념의 관계를 모순으로 볼 때 착한 것을 부정하면 곧 나쁜 것이므로 이 경우는 나쁜 행위를 한 셈입니다. 외면한 일은 분명 착한 행위를 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개념의 관계를 반대로 보면 착한 것을 부정한다고 곧 나쁜 것이 아니라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립적인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행위에 대해서는 착한 행위는 아니지만 나쁜 행위도 아니다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립되는 주장이나 개념의 성격이 모순인지 반대인지 애매할 경우에는 정의를 미리 내려 관계를 규정한 다음 논의를 진행해야 혼선을 막을 수 있습니다.

추가로 개념이나 주장 사이의 대립 관계를 통해 논증을 펼친 사례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에픽테토스라는 스토아 철학자는 죽음의 공포를 합리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논증을 펼쳤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찾아왔을 때는 이미 내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며 내가 살아있는 한 죽음이 나를 찾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죽음은 같은 시점에서 만날 수 없는 별개의 세계에 속해 있으므로 내가 죽음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강도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로 인해 내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강도도 나를 알아 볼 수 없도록 하는 장치가 있다면 강도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에픽테토스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죽음과 만날 까닭이 없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삶과 죽음이 모순 관계임을 이용한 논증이지요. 죽음을 두려워하시는 분들, 어떻게 좀 위로가 되시는지요?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 교수. 의사소통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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