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곁의 취업사관학교]<2>안양 대림대 ‘주문식 교육’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9분


대림대 자동화시스템과 학생들이 이성재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에게서 자동화프로그램에 따라 부품이 가공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대학은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양=박영대 기자
대림대 자동화시스템과 학생들이 이성재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에게서 자동화프로그램에 따라 부품이 가공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대학은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양=박영대 기자
현장을 위한, 현장에 의한 맞춤강의

100여 업체와 협약 맺고 기업요구 교육과정 반영

교수들 수시로 공장 찾아 애로수렴 등 끈끈한 유대

“현장에서 통하는 기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러 왔다.”

25일 경기 안양시 동안구 대림대에서 만난 김진후 씨(23·자동화시스템과 1년)의 목표는 명확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 1년의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다 입학한 그는 “영어강사 생활을 30대 이후까지 지속하기는 힘들다는 판단이 섰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대림대는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에 초점을 맞춰 학생을 교육하는 ‘주문식 강의’를 2000년에 도입했다. 도입 초기엔 4개 과에만 적용했으나 지금은 전체 22개 과 중 10개 과에서 실시할 정도로 확대했다. 주문식 강의를 도입한 자동화시스템과의 지난해 취업률은 96%. 대학 평균은 84.7%다.

주문식 강의를 실시하는 학과에서는 교수의 발언권이 없는 ‘이상한’ 회의가 1학기에 한 번씩 열린다. 이 회의에서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이 학과 산학협동위원회 소속 기업체의 과장과 부장들이다. “요즘 기업에서는 새로 나온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장착된 자동화기계를 쓰고 있다. 아직도 예전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가르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기업 현장 전문가들이 교육과정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교수들은 교육과정 설명만 한 채 발언을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른바 ‘기업체 전문가 회의’다. 이 회의 과정은 고스란히 녹화된다. 회의를 마친 교수들은 기업들이 요구하는 직무를 분석해 새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이는 대학 교육과정심의위원회에 상정돼 다음 연도 교육과정에 반영된다. 자동화시스템과에 전자기학이 폐지되는 대신에 창의적 공학설계 과목이 신설되고, 모터제어 수업 내용이 실습 위주로 확 바뀐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교양영어 외에 기술서적을 해독하기 위한 전공영어 과정도 이렇게 해서 생겼다.

“졸업생수보다 2, 3배 많은 일자리 제안 들어와”

교수들은 직무 분석에 따른 교육과정 편성 방법을 배우기 위해 2001∼2004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연수를 받고 자격증도 땄다. 방학 중에는 기업의 수요를 반영한 실무위주 교육을 별도로 실시한다. 과별로 20명을 선발해 취업을 약속한 기업들이 요구하는 전공 심화 과정을 별도로 가르친다. 자동차과에서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주문식 교육 협약을 체결하고 국내 애프터서비스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이때다.

교육만 한다고 취업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교수와 대학은 학생들을 취업시킬 수 있는 기업을 발굴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각 과에서는 산학협동위원회를 만들어 관련 기업을 참여시킨 뒤 여기서 유대관계가 돈독해진 기업을 ‘가족회사’로 편입한다. 공동 프로젝트로 관계가 더욱 공고해지면 주문식 교육 협약을 체결한다. 주문식 교육 협약을 맺은 기업은 매년 일정한 인원의 취업을 약속한다. 이중, 삼중의 기업체 풀(Pool)을 갖춘 셈이다. 현재 산학협동위원회에 참여한 기업은 600여 곳이고, 가족회사는 400여 곳이다. 이 중 약 100곳과 주문식 교육 협약을 맺었다.

기업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자동화시스템과 교수들은 3, 4명이 팀을 이뤄 인근 아파트형 공장에 있는 기업체를 약속도 없이 불쑥 방문하곤 한다.

이성재 교수(주문식 교육 사업단장)는 “처음에는 사장들도 ‘대학교수들이 이렇게까지 하느냐’며 의아해하다가도 기술적 애로 같은 얘기를 나누다 보면 관계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관계가 시작되면 대학은 정부가 공모하는 프로젝트 정보와 연구인력 등을 기업에 제공하며 서로 이익이 되는 방안을 모색한다. 대학이 보유한 장비 중 기업이 필요로 하는 걸 빌려가서 사용할 수 있도록 문도 열어둔다. 지역 밀착형 ‘마케팅’이다.

대림대는 앞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과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경력개발인증 프로그램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승 대림대 산학협력처장은 “믿기지 않겠지만 자동화시스템과는 매년 연봉 1500만∼2200만 원 되는 일자리 제안이 졸업생 수보다 2, 3배 많이 들어오지만 학생들이 단순히 ‘공장’이라는 이유로 가기를 꺼린다”며 “앞으로는 직업에 대한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내 곁의 취업사관학교’를 찾아갑니다.

고교든 대학이든, 간판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진짜 꿈과 일자리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교육 현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고교 졸업생의 대학진학률이 84%(2008학년도)나 되고, 구직 눈높이와 취업 현실의 괴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큽니다.

시대 변화를 재빠르게 교육과정에 접목하거나 남다른 열정과 아이디어로 취업·진로 교육을 하고 있는 현장을 e메일(jameshuh@donga.com)로 알려주십시오. 바로 찾아가겠습니다.

안양=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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