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법 교수 132명 “사형집행 재개 반대” 성명

  • 입력 2009년 3월 13일 13시 56분


최근 강호순 사건 등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사형집행을 재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전국의 형사법 전공 교수 132명이 사형제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법대 교수들이 공동으로 사형제 관련 성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3일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 동아대 법대 허일태 교수를 비롯한 전국 대학에서 형사법을 담당하는 교수들은 ‘우리는 사형집행의 재개를 강력하게 반대합니다’라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6일 시작된 이 성명의 서명운동에는 11일까지 형사법 전공 교수 160여 명 중 압도적 다수에 해당하는 132명이 참여했다. 거의 대부분의 대학 교수들이 참여한 것.

이들은 “사형은 야만적이고 비정상적인 형벌”이라며 “사형집행 움직임은 전 세계적인 사형폐지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고 인권후진국으로 전락 하는 것을 의미 한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 조국에서는 어떠한 사형도 없어져야 한다. 장기자유형(감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제의 대체효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매년 2∼3개 국가가 사형제를 폐지하고, 사형을 폐지하거나 10년 이상 처형이 없었던 국가가 138개국이나 되지만 지난해 사형을 집행한 국가는 24개국에 불과하다”며 “사형제 폐지는 범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사형이 살인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으며 이는 세계적으로 증명되고 있다”며 “사형제가 두려워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연쇄살인범은 없다”고 강조했다.

교수들은 “모든 판결에는 오판 가능성이 있으며 세계의 역사는 사형의 정치적 남용의 사례로 가득 차 있다”며 “사형수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죄를 저질렀다고 하나 그들도 인간이며, 사형은 인간의 개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수들은 아울러 사형제가 피해자들의 응보 욕구를 일부 채워주지만 피해자가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고, 사형집행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 교도관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했다.

이들은 “이제는 사형제 폐지를 논의할 때”라며 “사형을 폐지하지 않더라도 사형에 대한 제도적 유예조치(moratorium)를 최소 전제로 하고 그 위에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인섭 교수는 “형사법교수들의 압도적 다수는 사형집행에 대한 반대의견을 갖고 있으며 서명에 참여하지 않은 일부 교수들도 사형제 폐지 견해에는 동의하나 ‘서명’은 곤란하다거나, 사형제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졸속집행엔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사형제 찬성’이라는 우리 국민들의 법감정에 대해 “국민 법감정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라며 “어느 나라나 국민들이 사형제를 폐지하자고 나선 적은 없다. 국가에서 사형제를 폐지하고 나서 점차적으로 여론도 사형제 폐지 쪽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날 오후 국회의원과 법무부에 성명서를 전달하는 등 사형 집행 저지와 사형제 폐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현재 59명의 사형 미결수가 있지만 지난 11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 사회로부터 ‘사실상의 사형폐지’(abolitionist in practice)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 동아닷컴 이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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