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소년들, 꿈을 크게 갖고 ‘세계의 문제’ 고민해야”

  • 입력 2009년 3월 5일 02시 58분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 내정자는 3일 보스턴 아파트에서 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학교 운영에 반영하기 위해 취임 후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보스턴=신치영 특파원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 내정자는 3일 보스턴 아파트에서 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학교 운영에 반영하기 위해 취임 후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보스턴=신치영 특파원
‘타임誌 100인’ 선정 2006년 부인과 함께 2006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김용 교수(오른쪽)를 ‘세상을 변화시킨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한 뒤 개최한 기념행사에 참석한 김 교수 부부. 부인 임연숙 씨는 보스턴아동병원 소아과 의사로 일한다. 사진 출처 다트머스대 홈페이지
‘타임誌 100인’ 선정 2006년 부인과 함께 2006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김용 교수(오른쪽)를 ‘세상을 변화시킨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한 뒤 개최한 기념행사에 참석한 김 교수 부부. 부인 임연숙 씨는 보스턴아동병원 소아과 의사로 일한다. 사진 출처 다트머스대 홈페이지
아시아인 최초 美아이비리그 다트머스대 총장 내정 김용 박사

《“학생들과 어울려 운동도 하고 학교 식당에서 식사도 같이 하면서 자주 어울리고 얘기하고 싶다. 그래야 요즘 학생들은 어떤 고민을 하며 사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학생들의 문화는 어떤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미국 동부 명문 사립대인 다트머스대의 17대 총장으로 내정된 김용 하버드대 교수(49)는 3일(현지 시간) 보스턴 자택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능한 한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밝혔다. 김 교수가 ‘학생들과 자주 어울리는 총장’을 지향하는 데에는 다른 뜻도 있었다. 어떤 교수가 제대로 가르치고, 어떤 교수가 부족한지는 학생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학생들을 통해서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

아이들은 더불어 사는 삶을 원하는데, 부모들이 한사코 반대하는 것이 문제

미국에서 주류사회에 진입 원한다면 다양한 인종과 어울려 그들 이해해야

오바마 당선이 제가 총장되는데 영향…美정부에서 일할 기회 있었지만 사양

당초 바쁜 일정 때문에 15분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던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50분 가까이 이어졌다.

한국인은 물론이고 아시아계로도 첫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이 되는 그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와 농구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아홉 살 때 치과 의사인 아버지 덕분에 골프를 시작해 고등학생 시절 핸디캡이 2, 3(72타 기준으로 평균 74타 또는 75타를 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빈국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골프를 못 쳤는데 다트머스대 골프장에서 학생들과 골프를 자주 치고 싶다고 했다.

화제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 옮겨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에 사는 소수인종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20∼30년 전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제가 아시아계로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이 된 데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는 ‘미국 언론에 오바마 행정부의 에이즈 조정관 후보로 거론됐는데 현 정부에서 일할 용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기회가 있었다”고만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일할 수도 있었고, 혹은 미국 정부에서도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다트머스대 총장직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20년 넘게 구호 활동을 해왔지만 저 한 사람이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 제가 할 일은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고 잘 가르쳐서 저보다 더 큰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버드대 의대 재학시절인 1987년 빈국을 위한 의료구호단체인 ‘파트너스 인 헬스’를 동료와 함께 공동 설립했던 김 교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봉사활동에 대한 고민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경기여고를 수석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을 오신 어머니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셨다. 지금도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 대한 책을 쓰고 계실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신 분인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퇴계와 마틴 루서 킹 목사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시며 큰 뜻을 품고 세계를 위해 봉사하라고 가르치셨다. 10세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외조부가 시인 전병택 씨(97), 외삼촌은 현재 성균관대 교수로 있는 전헌 교수(67)라고 소개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교육시킨 방식으로 두 아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첫째 아들 토머스가 8세이고 지난달 27일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다트머스의 존 슬론디키 12대 총장이 평소 학생들에게 ‘세계의 문제는 너희의 문제다(The world’s trouble is your trouble)’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내 아이들은 항상 이런 생각을 품고 살았으면 한다. 세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기여하려는 마음을 갖도록 하려고 한다.”

그는 다트머스대가 위치한 하노버는 산이 좋고 스키장과 골프장도 많은 아름다운 곳이라며, 두 아들이 편하게만 살려는 생각을 하면서 자라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인터뷰 도중 몇 차례나 한국 학생과 부모들도 이런 고민을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 동포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돼서 ‘잘 먹고 잘 살기’만을 바란다는 것.

“한국 아이들도 이제는 어려서부터 가난한 이웃이나 빈국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키워야 한다. 자녀들이 더불어 사는 법을 익히도록 하는 것은 부모들의 몫이다.”

미국에 사는 한국 동포나 한국 국민들도 어느 정도 잘살게 된 만큼 동아시아와 아프리카 빈민들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봐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하버드대에서 만나는 한국 학생들을 보면 봉사활동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부모들이 반대를 많이 한다. 결국 부모가 문제다.(웃음)”

그는 북한의 의료보건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한국의 결핵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보면 북한의 결핵 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할 것으로 짐작이 된다며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해 고민하는 동포 학생들에게도 충고를 했다.

“미국에 아직도 인종차별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린다. 미국 문화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고 미국 사회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부족한 것 같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가리지 않고 부대끼고 어울리면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미국 사회를 깊이 이해해야 미국 사회에서 큰일을 할 수 있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한국어로 인터뷰를 마친 김 교수는 “다섯 살 때 이민을 와 한국말이 서투르다”며 “한국 국민들께 송구하다”고 말했다.

보스턴=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美 동북부 지역에 있는 8개 명문 사립대학 통칭

담쟁이덩굴(IVY)로 덮인 오래된 건물 많아 유래▼

아이비리그(Ivy League)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다트머스 컬럼비아 펜실베이니아 브라운 코넬대 등 미국 동북부에 있는 8개 명문 사립대를 가리킨다.

1902년 8개 대학 간에는 미식축구와 농구 등 경기 리그가 공식적으로 결성됐는데 이들 대학에 담쟁이덩굴(Ivy)로 덮인 오래된 건물이 많다는 점 때문에 1930년대부터 언론에 ‘아이비리그’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이비리그는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각국의 인재를 모아 교육하는 엘리트 교육의 요람이기도 하다. 버락 오바마(하버드), 조지 W 부시(예일) 등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 다수를 포함해 미국의 지도층 인사 중 상당수가 아이비리그 출신이다.

하버드 예일 등은 대학원이 강하고, 다트머스대는 학부가 강한 전통이 있다. 다트머스대는 미국 최초로 공과대학과 비즈니스스쿨을 세웠다.

최근 아이비리그에서는 한국계를 포함해 중국, 인도계 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아시아계 입학생이 전체의 18%를 차지한다. 미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계는 미국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하지만 아이비리그에선 그 비율이 20%에 이른다.

‘아이비리그=우수 대학’이라는 인식이 강해 아이비리그에 버금가는 명문대인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시카고대, 존스홉킨스대 등을 모은 ‘아이비 플러스’와 앤아버 미시간대, 오스틴 텍사스대 등 우수한 공립대들을 모은 ‘퍼블릭 아이비’란 별칭도 있다.

:아이비리그(Ivy League):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다트머스

컬럼비아, 펜실베이니아, 브라운, 코넬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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