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문장강화

  • 입력 2009년 1월 12일 02시 59분


“나로서 말하고 싶은 것을 맛깔나게 표현하라”

상허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그가 연재하던 글을 모아 1940년에 출간한 책이다. 저자는 한글 문장의 쓰임을 세밀하게 보듬고, 한글의 아름다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시종일관 ‘정신이 들지 않는 글, 주관이 들지 않은 글, 글쓴이의 감정과 교섭 없이 나온 글’을 경계한다. 또한 전통과 권위에 대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산 사람은 생활 그 자체가 언제든지 새로운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정신은 이 하나로 통한다. 나로서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라!

당대에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이라 불릴 정도로 그는 산문의 달인이었다. 이 수준의 장인에게는 표현의 미묘한 차이가 어떠한 근본과 통하는 것인지를 꿰뚫고 있을 터. 그가 보여주는 표현법 강좌는 무조건 어떤 표현은 좋지 않다는 식의 훈계가 아니다. 우리글의 맛이 살아 있는 실제 사례들을 보여주면서 친절하게 토닥이는 식이다.

서간문 편에서, 임진왜란 때 피란 간 선조대왕이 멀리 있던 셋째 딸에게 보낸 편지글을 살펴보자.

‘그리 간 후의 안부 몰라 하노라 어찌들 있는다 서울 각별한 기별 없고 도적은 물러가니 기꺼하노라 나도 무사히 있노라 다시곰 좋이 있거라.’

마주 보고 말하는 듯 쉬우면서도 품위 있게 쓰라는 것. 서간문 쓰기에서 긴 설명 없이도 짧은 사례에 요점을 담는 재치가 뛰어나다. 배우는 우리도 용기가 난다.

그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왜 그래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매끄럽게 보여준다. 묘사 편에서 그는 우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아름답구나!’ 하는 것은 자기의 심리일 뿐, 독자는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독자에게도 그런 심리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하늘, 구름, 산, 내, 나무, 돌 등 풍경의 재료를 조합해서 표현해야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일러준다. 묘사 안에도 근거를 담는 논리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심리적 공유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맛이 없는 글’을 경계한다. 동복 입은 친구를 그리는 수업에서 “동복 빛이 까마니 온통 까맣게 칠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한 친구에게 “눈 온 벌판을 그려라 하면 백지를 그대로 내놓겠구나?” 하고 반응했던 미술 선생님의 재치를 보여준다.

어렵고 추상적인 지식이나 개념은 생동감을 죽인다. 진정한 맛은 ‘검은 옷은 검다’와 같은 딱딱한 관념이 아니라 눈 덮인 벌판에 대한 느낌에서 출발한다. 내 일상을 관찰하는 나의 눈이 곧 나의 글이다.

세상사에서 아는 것과 잘하는 것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 법. 음악 이론에 박식하다고 노래도 꼭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문장작법에 관한 탁월한 이론서이자 동시에 그 자신이 좋은 문장의 모범사례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도 그만큼 잘 쓰게 될까. 여기에 상허 선생이 준비해 둔 답변이 있다. ‘글은 배워야 알고, 연습해야 잘 쓸 수 있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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