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진화하는 ‘기러기 송년회’

  • 입력 2008년 12월 23일 03시 07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유학생을 둔 학부모들의 카페 모임을 운영하는 40대 중반의 직장인 A 씨. 아들과 부인이 미국에 있는 10년차 기러기인 A 씨는 요즘 카페 회원들의 연말모임 준비로 바쁘다.

모임시간과 장소, 회비 등을 공지한 메일을 단체 발송하고 회원의 참석 의사를 확인하느라 퇴근 후에도 휴대전화를 놓을 수가 없다. 모임을 이틀 앞둔 현재 참석의사를 밝힌 회원은 30여 명.

기러기 아빠엄마의 연말모임이라 하면 허전함을 달래기 위한 거나한 술판을 상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A 씨는 “(고기를) 굽고 (술을) 푸는 연말모임을 한 적도 있지만, 요즘은 오프라인 모임도 유학정보를 교환하는 성격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늦게까지 흥청망청하는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모임에선 유학정보 교환이나 교육정책에 대한 즉석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베테랑’ 기러기들이 얘기해 주는 혼자 사는 기러기의 자기 관리법을 전수받기도 한다. 대부분 시행착오 끝에 온 몸으로 체득한 알짜배기 정보라 인터넷상에 떠도는 출처불명의 정보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회원들의 호응이 높다.

요즘은 기러기 아빠만큼이나 기러기 엄마도 많은데, 모임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서로의 자녀가 외국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알고 ‘언니, 동생’하는 ‘의자매’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겨울방학을 이용해 귀국한 자녀가 있으면 데려와서 또래들과 서로 안면도 익히게 하고 인터넷 메신저나 홈페이지 주소를 교환하면서 인맥을 만들게 도와주기도 한다.

올해는 경기침체의 여파로 모임에 참석하는 자녀들이 예년보다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겨울방학이 짧은 영미권 학교의 특성상 잠깐 얼굴 보자고 비싼 비행기 삯을 내고 외국에 있는 가족 전체가 한국으로 오기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고환율의 압박에 생활비와 학비 송금의 부담이 이미 상당한 터라 예년 같으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혼자라도 비행기에 오르던 기러기들도 출국을 내년으로 미룬 경우도 많다.

A 씨는 “돈이 많아서 보냈을 텐데 무슨 걱정이냐고 하겠지만, 기러기들 중에는 급여를 쪼개고 아껴 송금하면서 생활하는 평범한 직장인도 많아서 경제적 압박을 느끼는 분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왜 저렇게 사냐”면서 자신을 처량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거부한다. 떨어져 지내는 탓에 살을 맞대고 생활하지는 못하지만 전화나 인터넷으로 매일 10분씩이라도 대화를 나누면서 가족에 대한 애정은 더 끈끈해졌다.

A 씨는 “언론은 실패한 기러기들에게만 주목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성공 케이스도 적지 않다”며 “아이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러기 생활에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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