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시공간의 벽을 허문 인터넷…

  • 입력 2008년 12월 1일 02시 59분


지금껏 인류가 겪어 보지 못했던 매우 강력하고 새로운 친구가 등장했다. 아는 것도 많지만 흰소리도 만만찮고, 훈훈한 성격인 듯 하다가도 때론 생각 이상으로 잔인하다. 종잡을 수 없는 복합성을 가진 친구. 그 이름 인터넷이다. 데이비드 와인버거의 ‘인터넷은 휴머니즘이다’란 책은 2002년 웹브라우저 탄생 10주년을 기념해 출판된 인터넷 비평서다.

왜 유독 웹 브라우저일까. 웹 브라우저는 인터넷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웹 브라우저가 없었다면 컴퓨터 기술에 능한 고수들만이 인터넷에 입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공간, 시간, 물질, 인간 등 철학적 차원의 범주를 타고 인터넷에 접근한다. 칸트는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는 이유를 인간이 선천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와인버거는 인터넷이 바로 우리들의 시간과 공간의 형식을 변화시켰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선 공간부터 살펴보자. 현실의 공간은 크게 측정공간과 생활공간으로 구성된다. 모든 사물은 경험이 가능한 측정공간 안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다. 장소에서는 공간이 사물에 앞선다.

반면 생활공간에서는 나의 관심과 관계에 따라 공간이 재배치된다. 방 안의 가구 위치를 바꾸면 우리의 느낌도 추억도 달라진다. 생활공간에서는 사물에 따라 사건과 세상이 재창조되기 때문에 인간의 의도와 욕구가 관건이다.

인터넷의 혁명적 변화는 바로 생활공간의 확대에서 기인한다. 그것도 꿈에서나 가능했던 ‘장소 없는 공간’을 실제 눈앞에서 경험하게 해준다. 만질 수는 없지만 볼 수는 있다. 인터넷에선 집 옆에 있는 미술관보다 루브르 박물관이 더 가깝다. 네트워크의 거리감은 지리적 거리와 다르다. 웹 문서로 가득한 세상에서 근접성을 결정하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관심’이다.

시간은 어떨까. 시간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로 나눈 것이 순간이다. 전통 관념에서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순간은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불가역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모든 시간이 이야기로 채워지고 그 이야기들은 계속 누적된다. 우리는 최진실 씨의 죽음과 이혼 과정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죽어가는 순간과 살아나는 순간을 결정하는 것, 그것도 바로 우리들의 ‘관심’에 따라 결정된다.

등장한 지 20년도 채 안 된 웹 공간이 시공간의 구조를 무너뜨리며 종횡무진하고 있는 모습은 흡사 괴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인터넷은 너무나 인간적이기도 하다. 수많은 검색 실패와 깨진 링크들, 허술하고 끔찍한 정보들로 우리를 오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진짜 모습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미디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메시지 그 자체’라고 말했던 마셜 맥루한의 정의처럼 인터넷은 숙제나 쇼핑 도우미 정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