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20년 후 ‘박민기의 정리’를 기대하세요”

  • 입력 2008년 8월 19일 03시 01분


《박민기(서울 신방학초등학교 5학년) 군의 수학 문제집은 언뜻 보면 게으름뱅이를 연상케 한다. 문제 밑에 응당 있어야 할 문제 풀이 과정은 한 줄도 없이 덜렁 답만 적혀 있는 데다 모든 답에는 ‘정답’임을 나타내는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숙제하기 귀찮아 답지에서 정답만 베껴 적은 듯하다. 웬만한 어른도 끙끙대는 경시대회 문제집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박 군은 수학 영재다. 6월 1일 동아일보가 후원하고 성균관대가 주최하며 하늘교육이 주관한 ‘전국 영어·수학 학력경시대회’ 초등 5학년 수학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박 군은 “머릿속에서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기 때문에 풀이과정이나 수식을 따로 적을 필요가 없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전국 영어·수학경시대회’ 대상 초등 5학년 수학영재 박민기 군

○ 생후 40개월에 두 자리 덧셈 ‘척척’

박 군은 생후 40개월 무렵부터 수학적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외할아버지 병문안을 갔다 ‘36+28=64’와 같은 올림이 있는 두 자릿수 덧셈을 척척 해내자 친척들은 ‘수학 신동이 났다’며 놀라워했다.

예전부터 박 군의 숫자 감각이 남다르긴 했다. 부모가 접시나 책 같은 구체적인 사물을 활용해 1부터 10까지 가르친 다음, ‘10에 1을 더하면 11이 된다’고 설명해 주자 ‘12, 13, 14…’ 등 두 자리 숫자는 스스로 깨우쳤다.

박 군 부모는 ‘요즘 애들은 다들 똑똑하다더니, 또래 아이들도 모두 이 정도는 하겠거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래들과 확실히 달랐다. 한글을 깨칠 무렵 시작한 방문 학습지로 5세부터 7세까지 3년간 배울 내용을 1년 만에 독파해 버렸다.

초등학교에서도 웬만한 시험은 5분 만에 ‘뚝딱’ 해치우고 무료해하는 박 군에게 담임선생님은 영재교육원 도전을 권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경험 삼아 영재교육원 선발시험에 응시한 게 3학년 겨울이었다. 2학년 때부터 준비해도 쉽지 않다는 영재교육원 시험에 단번에 합격한 박 군은 현재 서울 북부교육청 부설 영재교육원에 다니고 있다.

특유의 암산능력 덕분에 평균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경시대회 수준의 문제도 30∼40분이면 풀어버리는 박 군에게도 약점은 있다. 어려서부터 학원에서 문제풀이 훈련을 받은 친구들에 비해 공식을 활용하는 정형화된 문제를 풀거나 영재성을 키우기 위한 블록 등 교구를 활용할 때는 다소 낯설어 하는 편이다.

○ 타고난 재능+풍부한 독서=실력의 비결

이 같은 실력의 비결은 무엇일까.

박 군의 어머니 김경선(35·서울 도봉구 방학동) 씨는 “민기는 후천적 노력보다는 타고난 재능의 영향이 큰 편이라 특별한 비결은 없다”면서 “다방면에 걸친 독서경험이 수학은 물론 사회, 과학 같은 과목의 기초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박 군은 생후 27∼28개월부터 전단지에 적힌 글자를 따라 읽으면서 한글을 익혀 세 돌 무렵에 이미 신문을 읽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읽은 책만 어림잡아 1000여 권이다. 학교 숙제와 영어학원 때문에 독서 시간이 크게 줄었다는 3학년 때도 연간 7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대부분 역사나 과학 분야의 서적이어서 초등 저학년생이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200쪽이 넘는 두꺼운 책도 많았다. 독서로 배경 지식이 풍부해지자 영화, 신문, TV 다큐멘터리 등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게 박 군의 공부 소재가 됐다.

여름방학에 또래 친구들은 학원 특강이다 영어캠프다 해서 분주하지만 박 군은 3월부터 시작한 수학학원, 학교 도서관에서의 두 시간 남짓한 독서, 방과후 컴퓨터 교실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집에서는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TV로 운동경기를 본다. 박 군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축구.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축구팀 전원의 이름과 소속팀을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다.

○ “내 이름 딴 수학공식 만들래요”

박 군이 수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지만 부모는 수학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 과학고 진학에 박 군을 ‘올인’시키고픈 마음은 없다.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고 맹목적으로 달려갔다가 실패했을 때 아이가 받을 충격을 염려해서다.

“수학 한 과목만 잘하기보다는 나중에 사회인으로서 생활할 때 유용한 역사, 지리, 영어 같은 과목을 고루 잘하는 편이 더 좋다”고 김 씨는 생각한다. “앞으로도 수학을 계속 잘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앞으로 장래희망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고….”

부모의 기대 섞인 우려와 달리 박 군의 꿈은 확고하다. 세계적 수학자가 돼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가우스나 피타고라스 같은 유명한 수학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딴 공식이나 정리가 있잖아요. 저도 나중에 ‘민기의 정리’와 같은 제 이름을 딴 공식을 하나쯤 갖고 싶어요.”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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