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정부는 작을수록 좋다?

  • 입력 2008년 4월 21일 02시 54분


《정부의 크기를 둘러싼 논쟁은 자본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이 논쟁의 핵심은 ‘큰 정부가 좋은가 아니면 작은 정부가 좋은가’에 있다.

이 해묵은 논쟁에 해법은 없는 걸까?》

국가의 시장 개입 줄여야 vs 오히려 늘려야… 끝없는 논쟁

바람직한 정부, 경제로만 따질수 있을까

○ 생각의 시작

추운 겨울, 개미와 베짱이가 사는 마을을 지나면서 임금님은 개미는 부유하게 살고 있지만 베짱이는 가난한 것을 보고 크게 개탄했다. 그래서 부자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려 가난한 벌레들을 지원해 주도록 하는 법을 정하여 공포했다. 그 임금님은 이듬해 여름 그 마을을 다시 찾아가 보았다.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여름 한철 열심히 일해야 할 이 나라의 벌레들은 모두 냉방이 잘된 노래방에 가서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베짱이뿐 아니라 개미까지도. 임금님의 외마디. “아! 개미 너마저도….”

[KDI 국민경제교육연구소, ‘이야기로 배우는 고교생 경제’,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이 우화는 정부의 개입이 본래 의도와는 반대로 사태를 최악으로 몰고 갔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우화의 실제 배경은 ‘복지병(病)’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사례이다. 잘 알다시피 영국은 1960년대 세계 제1의 복지국가였다. 그러나 1970년대 영국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 소위 작은 정부론자들은 그 이유를 복지를 위한 무거운 세금 부담과 그로 인한 근로의욕과 유인동기의 저하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을 발판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시장과 효율성을 절대선(絶對善)으로 신봉하는 신자유주의다.

○ 뒤집어 보자

선진국 사람들의 물질적 풍요와 높은 삶의 질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선진국 국민의 생활 중 우리와 가장 다른 점은 그들 나라에는 양질의 공공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깨끗한 환경과 공원, 잘 정비된 교통 시설과 대중 교통망, 통신망, 효율적인 행정 조직, 사법 제도 등과 같은 기반 시설과 제도, 공공 서비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 (중략) 우리가 앞으로 진정한 의미의 선진 복지 국가를 이루려면 국민 총생산의 증가뿐 아니라 잘 정비되고 효율적인 공공 서비스와 제도를 함께 갖추어야만 한다. 여기에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정부 기능이 전제되어야만 한다.[2000년 4월 28일 신문기사,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이 글은 선진국의 조건으로 양질의 공공재를 꼽고 있으며, 이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큰 정부론자들은 과거 대공황으로 치달았던 시장 실패의 역사를 상기할 것을 역설한다. 공공재의 생산 부족뿐 아니라 독과점의 폐해, 환경오염과 같은 외부 불경제(不經濟)의 발생, 경기 불안정과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강력한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전제되어야 하며, 따라서 정부의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한 번 더 뒤집어 보자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평등한 주권에 기초하여 시장의 불평등 효과를 완화하는 힘이며, 따라서 민주주의에서 국가의 역할은 더욱 강해야 하고, 민주주의에서 정치의 논리는 복지 및 재분배와 같이 그 이전에 다루지 않았던 문제들을 보다 폭 넓게 포괄해야 한다. 시장경쟁에서의 열패자, 불평등한 소득 분배 구조에서의 약자, 그 밖의 다양한 소외 그룹의 문제를 보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조직은 국가뿐이다. 국가가 이 역할을 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 하에서 계급구조화와 차별은 더욱 심화된다.[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이 논리는 위의 두 번째 주장과 유사해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경제영역에 한정된 논쟁을 정치 영역, 즉 민주주의와 연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정부에 대한 논의를 경제 영역으로 한정하고, 경제를 정치와 분리하고자 하는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논의를 경제영역에 대한 개입의 정도, 즉 정부의 크기 문제로만 보는 시각은 생각의 폭을 좁힐 뿐만 아니라 소모적인 논쟁으로 흐르게 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평등하게 참여하여 자아를 실현하며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인류의 꿈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의 크기가 아니라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민주적인, 그리고 유능한 정부가 아닐까?

강창선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 정부 크기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한 더 많은 자료와 해설은 이지논술 홈페이지(easynonsul.com)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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