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토플대란’ 후 시험장 8곳→50곳 늘렸지만 시설 엉망

  • 입력 2008년 3월 24일 03시 00분


방음안돼 잡음半- 영어半

토플시험 ‘고난의 4시간’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인 대학원생 강모(29) 씨는 15일 부푼 마음으로 토플시험장인 서울 S대에 갔다. 박사과정 진학에 필요한 영어성적을 위해 지난 8개월간 준비한 IBT 토플 실력이 시험대에 오르는 날이었다.

그러나 강 씨는 시험장에 들어서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브라운관이 볼록한 구형(CRT) 모니터가 45도 각도로 책상에 놓여 있고 좌석 사이에는 종이로 된 간이 칸막이가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17만 원(약 170달러)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치르는 시험인데 시설은 너무 초라했다.

시험을 보는 4시간은 고난과 짜증의 연속이었다.

모니터를 보며 제한된 시간 내에 긴 지문을 소화해야 하는 읽기 시험 내내 한 씨는 칸막이에 신경을 쓰느라 지문의 흐름을 계속 놓쳤다. 먼저 시험을 마치고 퇴실하는 응시자들이 세 차례나 칸막이를 건드려 넘어뜨렸기 때문이다.

듣기 테스트 때는 말하기 시험을 보는 옆자리 응시생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마이크가 고장난 뒷자리 응시생의 계속되는 감독관 호출 소리에 강 씨가 쓴 헤드폰은 무용지물이 됐다.

마지막 관문인 쓰기 시험이 시작됐을 때 강 씨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고개를 내밀고 3시간 넘게 볼록 모니터를 내려다보느라 두 눈과 목 부위에 심한 통증을 느껴야 했다.

성적에 대한 기대를 접은 강 씨는 치미는 화를 간신히 참아내며 시험 종료 벨이 어서 울렸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강 씨는 "비싼 돈을 내고 어렵게 응시 기회를 잡았는데 시험장 시설이 안 좋아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었다"며 "서류제출 기한이 다가오는데 시험 기회가 또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토플대란 이후 시험장은 8곳에서 50여 곳으로 크게 늘었지만 시설이 열악해 수험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 '해커스 토플' 게시판에는 미흡한 방음장치와 기기 결함 등의 이유로 시험을 망친 수험생들의 후기가 매주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시험장 시설이 열악한 이유는 토플 출제기관인 ETS 한국지사가 뚜렷한 선별 기준 없이 시험장을 늘렸기 때문이다.

4시간 동안 모니터를 보면서 듣기와 말하기 시험 등을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iBT토플은 일반 영어시험과 달리 엄격한 시설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험장 섭외 업무를 담당하는 한미교육위원단은 시험장 선정 기준으로 컴퓨터 사양만 규정하고 있을 뿐 별다른 기준을 두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토플 시험을 유치한 대학들은 대부분 리모델링 없이 시설이 열악한 기존 강의실이나 전산실에서 시험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수도권 K대 관계자는 "시험 진행을 위한 전산 관리 인력만 해도 예산이 부족한 형편이라 방음 장치 등 시설 개선은 엄두도 못 낸다"고 털어놨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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