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통계로 세상읽기]소년소녀가장은 줄고 있지만

  • 입력 2008년 3월 10일 02시 59분


봄은 오지만… 불경기로 도움의 손길 줄어 1년 내내 ‘겨울’

삶이 버거운 소년소녀가장 3271명

“요즘 들어 부쩍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자주 나요. 그럴 때마다 저보다 동생이 더 측은하게 느껴집니다.”

소년소녀가장인 미영이는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남동생뿐이다. 남매는 월세 20만 원짜리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다. 동사무소에서 소년소녀가장에게 지원해 주는 돈으로 월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는 난방비도 아껴가며 빠듯하게 생활한다.

소년소녀가장은 ‘부모의 사망 혹은 이혼, 별거, 결손 등으로 인해 부모나 보호자로부터 보호나 부양을 받을 수 없어 스스로 가정생활을 꾸려나가야 할 책임을 지닌, 만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를 가리킨다.

미영이와 같은 소년소녀가장은 국내에 얼마나 될까? 2006년을 기준으로 보면 국내 소년소녀 가구주는 2086명이고, 가구주를 포함한 전체 가구원 수는 3271명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0.007% 정도로, 인구 1만 5000명 중 1명이 소년소녀가장인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년소녀 가정의 가구주는 말 그대로 가장인 10대 청소년을 말하며, 가구원은 부모의 부양 능력이 없어 서류상으로 가장이 아니지만 실제적으로 ‘가장 역할’을 하는 아이들이다.

소년소녀가장의 수는 외환위기 때인 1997년에 1만 6547명(가구주 9544명, 전체 가구원 7003명)으로 가장 많았다가 최근 들어서 줄어들고 있다. 2006년에는 3271명으로 1997년에 비해 5분의 1로 줄었다.

그러나 소년소녀가장의 수가 줄었다고 해서 이들의 외로움과 삶의 무게마저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말 그대로 한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이들은 또래 친구들이 공부에 열중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는 시간에 집안을 돌봐야 한다. 국내 소년소녀 가정은 가구주보다는 가구원의 수가 더 많다. 대체로 조부모나 병들어 일하기 어려운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들을 돌보는 것까지 소년소녀가장의 몫이 된다. 이런 생활 속에서, 청소년 시기에 누려야 할 다양한 교육기회와 문화생활은 꿈꾸기조차 어렵다.

“가끔씩 학원 다니기 싫다고 투정하는 친구들 보면 ‘내가 대신 가줄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요. 저는 수업 시간에 절대 자지 않아요. 졸릴 때는 손톱으로 허벅지를 꼬집어요. 정말 피곤하면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아요. 그리고 속으로 몇 번씩 나 자신과 이야기하죠. 이거라도 듣지 않으면 나는 배울 기회가 없다, 수업시간에 잠깐 졸 권리조차 나에게는 없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김장을 해주거나 연탄을 제공해주는 등 여러 곳에서 소년소녀가장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이런 도움의 손길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에게 따뜻한 사람의 정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모처럼 마음을 다해 이들의 진로를 걱정해주는 사람도 필요하고, 일상의 사소한 투정을 받아줄 사람도 필요하다. 좋은 영화나 음악을 함께 나눌 사람도 필요하고, 학교에서 학부모를 초청할 때 옆에서 격려해줄 어른도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 곁에 있는 소년소녀가장과 좋은 인연을 맺어줄 사람들이 절실하다.

부모에게 사랑받고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은 최소한의 행복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부모의 가출, 이혼, 사별 등으로 원치 않게 소년소녀가장이 되었거나 고아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많다. 이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은 어려운 환경에 있다고 측은하게 보는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이다.

“사는 게 힘들다고 해서 아는 분들께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제 친구들도 우리가 힘들다는 걸 의식하지 않고 잘 대해주었으면 하고요.”

우리 주변에는 이같이 생각하는 소년소녀가장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그들을 안쓰러워하면서도 때로는 이상한 시선을 던지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 마음에 소년소녀 가정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소년소녀가장의 통계적인 수치는 줄어들었을지라도 소년소녀가장이 느끼는 마음의 아픔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구정화 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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