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귀국한다고 비행기표까지 끊어놨는데”

  • 입력 2008년 3월 5일 02시 58분


■ 추락한 유엔헬기 탑승 박형진 중령 가족들 오열

가족들 만류에도 “국가가 나를 부르는데…”

그루지야 근무 마치자마자 다시 네팔로

유엔 “박중령 포함 10명 사망” 공식 발표

네팔에서 유엔평화유지군으로 복무하다 헬기 추락 사고를 당한 박형진(50·사진) 중령의 부인 신난수(48) 씨는 4일 남편의 체취가 담긴 군복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박 중령이 1월 휴가 때 집에 두고 간 군복으로 왼쪽 소매에는 태극 마크, 오른쪽 소매에는 유엔 마크가 붙어 있었다.

신 씨는 “본래 네팔은 남편이 가야 할 곳도 아니었다”며 “최전방으로, 해외로 홀로 떠돌며 고생만 하더니 결국 이렇게 가느냐”며 군복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그루지야에서 1년 반 동안의 정전감시단 근무를 마치고 2006년 9월 귀국한 박 중령은 곧바로 유엔 네팔임무단 파견 제의를 받았다.

처음에 가족들이 “늦은 나이에 왜 또 위험한 곳에 가려고 하느냐”고 만류하자 박 중령은 그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나 유엔 측이 내전 감시 경험자를 요청하는 바람에 박 중령은 지난해 3월 네팔로 파견됐다.

당시 신 씨는 “대한민국에 군인이 당신밖에 없느냐”고 푸념했지만 국가의 부름에 따르기로 마음을 굳힌 남편을 붙잡을 수 없었다.

박 중령은 “영어 단어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국가안보가 왔다 갔다 한다”며 “그동안 갈고닦은 영어 실력을 뜻 깊은 일에 쓰고 싶다”고 부인을 설득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임무수행 능력을 인정받아 유엔메달을 받았다.

박 중령은 파견 기간(1년)이 끝나는 18일 귀국하기 위해 비행기표까지 끊어놓았지만 3일 오후(현지 시간)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해 생사 불명인 상태다.

이번 헬기 추락은 한국이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한 이래 세 번째 사고다. 박 중령이 사망한 것으로 최종 확인된다면 PKO 참여 요원 중 일곱 번째 사망자가 된다.

6포병여단에서 의무병으로 복무 중인 아들 박은성(25) 상병은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달려와 “군인이든 일반인이든 세계로 뻗어나가야 나라에도 보탬이 된다고 유학을 권하셨던 아버지가 이역만리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박 상병은 아버지가 미국 교육사령부 교환교관으로 부임했던 2001년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2006년 대학을 졸업했다. 신 씨는 “남편이 공수부대 출신이어서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1월에 네팔에서 남편과 함께 보낸 20일이 마지막 여행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한편 군 당국은 이날 사망자 신원 확인을 위해 감식 전문가가 포함된 사고조사단과 박 중령의 동생 및 아들을 현지에 파견했다.

네팔 보안당국은 이날 현지조사 결과 12구의 시신을 발견했으나 시신이 심하게 불에 타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언 마틴 유엔사무총장 특별대사는 네팔 헬기 사고로 10명이 사망했고 이 가운데 박 중령도 포함돼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국방부는 “탑승자 집계 방식에 다소 차이가 있어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이훈구 기자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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