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과학의 이론과 실제]방짜유기로 본 장인과 과학

  • 입력 2008년 2월 25일 02시 50분


금속학 이론으론 불가능한

안성유기의 구리-주석 비율

‘과학적 근거없다’는 말은

거짓이란 뜻이라기보다

근거 알수없다는 말일뿐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있다. 예로부터 안성지방은 유기(놋그릇)로 유명한 지방이다. 놋그릇은 놋쇠를 이용하여 만든 그릇을 말한다.

유기는 대표적인 구리합금 금속. 청동기시대가 시작된 후 꾸준히 사용해왔다. 유기를 만드는 지역은 여러 곳이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안성지방에서 만든 유기를 최고로 쳤다.

안성에서 만든 유기 중 일반서민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통 ‘장내기’라고 하였으며, 관청이나 양반가의 주문을 받아 특별히 품질과 모양을 좋게 만들어낸 것을 ‘모춤(마춤)’이라 하였다. 안성에서 만든 모춤(마춤)의 품질과 모양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안성맞춤’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유기 중에서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모춤(마춤)은 구리와 주석을 78 대 22 비율로 섞어 녹인 후 식혀 만든 합금을 망치질을 통해 그릇 모양을 만든 다음 광택을 낸 것인데 이것을 방짜(方字)유기라고 한다.

방짜유기의 미스터리 중 하나는 방짜유기 속에 포함된 구리와 주석의 비율에 있다.

합금이란 금속에 다른 첨가물을 넣어 그 성질을 개선한 것을 말하는데, 섞는 첨가물의 비율에 따라 그 성질이 크게 변하게 된다. 따라서 원하는 성질을 나타내는 합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비율을 정확히 맞추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구리와 주석의 경우 현대 금속학에서는 주석의 비율이 10%가 넘어가게 되면 경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잘 깨어질 수 있으므로 그릇으로서의 사용성이 안 좋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22%의 주석비율을 가진 방짜유기는 유기 중에서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방짜유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유기 만들기에 평생을 바쳤는데 그들이 현대 금속학에 대한 조예나 지식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비율로 각 성분을 섞었을 때 유기의 품질이 가장 좋아지는지를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라는 말을 마치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혹은 “거짓말이다”라는 의미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왜곡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한번 가정해 보자. 만약에 방짜유기에 대해 전혀 본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어떤 금속학자가 있다고 하자. 그 사람에게 누군가가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78 대 22인 훌륭한 합금이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 금속학자는 “주석의 비율이 10%를 넘어가면 그릇으로 사용하기 힘들기 때문에 주석의 비율이 22%인 그릇의 존재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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