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진천 백곡초교 마을도서관

  • 입력 2008년 2월 21일 03시 00분


충북 진천군 백곡초교 아이들이 신이 났다. 19일, 드디어 소망하던 학교마을도서관을 갖게 됐기 때문. 들뜬 아이들 손에는 전국 100호점 개관을 기념해 만든 가방이 들려 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여기다 담아 갈래요.” 그 웃음꽃, 책과 함께 영원하길. 진천=정양환 기자
충북 진천군 백곡초교 아이들이 신이 났다. 19일, 드디어 소망하던 학교마을도서관을 갖게 됐기 때문. 들뜬 아이들 손에는 전국 100호점 개관을 기념해 만든 가방이 들려 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여기다 담아 갈래요.” 그 웃음꽃, 책과 함께 영원하길. 진천=정양환 기자
산골학교에 책사랑 100호점 열었다

“학교마을도서관 전국 100호점 개설!”

전국에 100개의 씨앗이 뿌려졌다. 1991년 7월 전북 남원군 원천마을도서관을 시작으로 18년째. 올해 2월 19일,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이 세운 도서관이 강원도 산골부터 제주도 섬마을까지 100곳을 채웠다. 지난해 동아일보와 네이버가 함께하는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 프로젝트로 거듭나며 2007년 한 해에만 28군데 도서관을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100호점 주인공은 충북 진천군 백곡초등학교. 전교생이 56명밖에 안 되는 전형적인 산골 학교다. 하지만 학부모와 교사들의 3년간에 걸친 노력 끝에 세워진 도서관이라 100호점 개설에 값진 의미를 더했다.

백곡초교 학교마을도서관은 건물부터 다른 학교도서관과 차이가 난다. 학교 본관 내부에 마련한 게 아니라 아예 옆 마당에 따로 만들었다. 시골 학교에서 새 건물을 짓는 건 당연히 수월치 않은 일. 그걸 이끌어낸 주인공은 학부모 대표인 황규섭(45) 안상숙(44·여) 씨 부부다.

이들은 2002년 진천군에 터를 닦은 ‘귀농’ 부부다. 인천에서 음악학원을 운영하다 큰아이 선유(13)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이곳에 왔다. 연고도 없는 진천으로 과감히 이사한 이유는 “사교육을 못 받는 부분을 대신 채워 줄 근사한 자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에 가족은 만족했다. 하지만 둘 다 동화작가인 부부 눈에는 한 가지가 부족했다. 숲 속을 뛰노는 것도 하루 이틀. “아이들에게 자연은 좋은 친구였지만 모든 걸 채워 주진 못했어요.”(황 씨) 책이 부족하고 도서관이 없었다.

“그 무렵 백곡초교는 도서관이 따로 없어 복도에 책을 진열했습니다. 책 관리가 엉망이니 아이들도 책에 관심을 갖지 않더군요. 게다가 시골까지 잘 보급된 인터넷이 더 문제였어요. 우리 아이는 물론 마을 아이들이 도시 아이처럼 컴퓨터에만 매달려 있었어요.”(안 씨)

그때부터 황 씨 부부는 도서관 건립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도서관을 지을 공간이 없었다. 학교에서 1km 남짓한 곳에 있는 집을 도서관으로 내놓을 테니 책만 지원해 달라는 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 감화한 주민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황 씨 부부처럼 귀농한 가족들이 적극 나섰다.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등을 쫓아다니며 청원을 넣고 또 넣었다. 그러기를 3년, 지난해 12월 드디어 건물이 들어섰다. 그리고 이날, 백곡초교도 학교마을도서관을 갖게 됐다.

“진천군엔 학교마을도서관이 많습니다. 인근 상신초교나 금구초교는 전국에서도 도서관 운영이 잘되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들을 보며 학부모들은 자신이 적극 나서야 학교마을도서관도 꽃이 핀다는 걸 배웠습니다. 소중하게 얻은 기회, 절대 헛되이 쓰지 않겠습니다.”(황 씨)

“며칠 전 학부모회 어머니들과 약속한 게 있습니다. 어렵게 얻은 도서관, 알차게 이용하자고요. 특히 주위에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는 아이가 많아요. 이들도 자기 아이처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히자고 했습니다. 도서관을 운영하며 마을 아이 모두를 우리 자식으로 키우자는 뜻이죠. 학교마을도서관은 공동 육아 공간이 될 겁니다.”(안 씨)

진천=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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