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베르톨트 브레히트,‘살아남은 자의 슬픔’

  • 입력 2008년 1월 28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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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다고 생각하나요?

여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시인(詩人)이자 극작가였던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입니다. 브레히트는 왜 하필 살아남은 자의 기쁨 대신 슬픔을 노래했을까요? 브레히트의 눈에 비친 ‘살아남은 자’의 얼굴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요?

‘한 번도 침대에서 자본 적이 없는 프랑수아 비용은/ 서늘한 바람이 맛있음을 일찍부터 수월하게 깨달았네.’

[‘프랑수와 비용에 대하여’]

위 시에 등장하는 ‘프랑수와 비용’의 얼굴을 떠올려 보세요.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의 겨울을, 눈 내린 겨울밤을 지새웠을 그의 눈빛을 상상해 보세요. 일그러진 표정으로 개똥밭을 뒹구는 사람이 떠오릅니까, 살아 있음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떠오릅니까? 이번에는 누군가의 ‘어머니’를 만나 봅시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나의 어머니’]

땅을 거의 누르지 않을 만큼 가벼워지도록, 누군가의 어머니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몸을 갉아 먹던 고통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사라졌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꽃이 자라고 나비가 날아올랐습니다. 끝없는 고통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체중이 가벼워졌던 그녀의 얼굴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이쯤에서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함께 그의 얼굴을 쳐다볼까요?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여러분의 얼굴은 누구의 얼굴을 닮았습니까? ‘프랑수아 비용’ 또는 ‘나의 어머니’의 얼굴을 닮았습니까, 아니면 ‘그’의 얼굴을 닮았습니까?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기에 행복한 그의 얼굴을 닮았다면,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그저 단순히 ‘현재’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럼 이제 다시 ‘슬픈 얼굴’을 봅시다.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얼굴은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첫 번째 전쟁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전쟁이 일어났었다./ 지난번 전쟁이 끝났을 때/ 승전국과 패전국이 있었다./ 패전국에서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다. 승전국에서도 역시/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다.’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여러분,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행복과는 무관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브레히트는 행복하고 기쁨에 들뜬 사람보다는 슬픔에 온몸을 적신 사람을 노래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브레히트는 이토록 애달픈 노래를 불러야 했을까요? 이제 그가 들려주는 마지막 노래에 나타난 사람의 얼굴을 봅시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이기고 살아남는 것은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위 시의 ‘강한 자’는 살아남은 자신이 미워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위 시의 그는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미워하게 되었을까요? 혹시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강해지는 것이 항상 좋은 일은 아닌 걸까요?

여러분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독일 작가 브레히트는 끝끝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살아남아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살아 있음에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을 안아줄 수 있겠습니까?”라고요.

황성규 타임에듀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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