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 뛰어넘기]대학의 글쓰기 교육

  • 입력 2008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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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는 대학에 합격한다고 해서 논술 공부가 끝은 아니라고 했었죠? 최근 3, 4년 사이에 대학에서는 글쓰기를 중심으로 하는 의사소통 교육이 상당히 강화됐습니다. 따라서 두 과목 정도는 필수 과목으로 글쓰기 과목을 수강해야 하는 대학이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세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수강해야 하는 대학도 생기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여자 대학은 거의 대부분 두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수강하게 합니다. 여성 리더십 교육의 일환으로 의사소통능력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과거의 ‘작문’처럼 애매하고 복합적인 성격의 강좌가 아니라 ‘학술적 글쓰기’, ‘발표와 토론’, ‘독서와 토론’ 등 목표가 뚜렷하고 구체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갖춘 강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고등학교 때 논술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들은 대학 합격의 영광만 맛보고 논술 공부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입학해서 다시 논술 강의를 들으며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글쓰기를 중심으로 한 의사소통 교육이 강화되고 있는 것일까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중고등학교의 논술 교육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재 대학 교양 교육의 새로운 흐름이 글쓰기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중고등학교 교육의 약점을 대학이 상당 부분 떠맡은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 대학생 중 상당수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논리적인 능력이 기대보다 부족합니다. 이런 현상은 바로 우리 사회의 중고등학교 교육이 선다형 시험인 대학 입시에 지나치게 몰입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기초적인 인문 교육을 소홀히 하여, 길러줘야 할 기본적인 의사소통능력을 길러주지 못한 것이지요. 대학 입장에서 보자면 중고등학교의 논술 교육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볼 대상이 아니라, 대학 교육의 출발점을 결정지을 중요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교 논술 교육이 대학 교육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체험한 일이 있습니다. 현재 제가 있는 대학으로 오기 전에 3년 동안 논술고사를 치지 않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선 ‘논술’이란 과목을 1학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초를 닦도록 제도화하고 있었습니다. 논술 시험 없이 대학에 입학하다 보니 고등학교 때 논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운 적이 있는 학생은 전체의 10%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첫 시간부터 찬반 논의를 할 쟁점을 주고 자신의 주장을 논증적으로 제시하라는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논술 훈련을 해본 적이 없었던 대부분의 학생이 괴로워하고 어려워하고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나 매주 한 편씩 과제를 수행하다 보니 학기말쯤 되자 어느 정도 논술에 대한 감을 잡았고 곧잘 글을 쓰거나 흉내 내는 수준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때쯤 되면 다른 과목에서도 보고서 정도는 쓸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셈입니다.

그런데 논술고사를 시행하는 대학으로 옮겨 ‘학술적 글쓰기’라는 과목을 담당하면서 학기 초에 비슷한 방식으로 과제를 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논술 시험을 안 친 대학의 학생이 학기 말에 도달할 수준에 처음부터 도달해 있는 학생이 대다수였던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체계적으로 논술 준비를 한 학생은 드물었을 겁니다. 아마도 수능 이후에 논술시험에 대비해서 집중적으로 연습을 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목마른 사람에게는 약간의 물도 큰 도움이 되듯이, 그 정도 훈련이라도 학생들에게는 큰 차이를 낳았던 것입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고등학교에서 논술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대학 교육의 출발점이 달라진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고교 논술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한 것입니다.

과거 본고사를 시행할 때 ‘대입 준비 과정에서 평생 영어 실력을 마련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의사소통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10대 후반의 언어논리 교육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연구도 많이 있습니다. 이제 논술 교육은 대학 입시의 도구로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합니다.

대학에 가서 제대로 공부하려면 중고등학교 때 논술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합니다. 대학에서 글쓰기 관련 강좌를 1학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한 것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대학 공부를 제대로 해나가도록 한 것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이후에도 자신의 의사소통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다음 회에는 우리 사회의 요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봅시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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