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공기업 개혁 제3의 길은 없을까?

  • 입력 2008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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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개입이 실패했다고 무조건 민영화?

경제를 공부한 학생이 아니더라도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에 대해서는 들어 보았을 것이다. 시장실패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공공재의 생산 부족이다. 공공재란 국방, 치안, 공원, 도로처럼 여러 사람의 공동 소비를 위해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말한다.

그런데 공공재에는 두 가지 독특한 성격이 있다.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이라는 것이다. 비배제성이란 어떤 사람이 대가를 치르지 않더라도 그 소비를 막을 수 없는 성질이며, 비경합성은 한 개인의 소비가 다른 사람들의 소비를 감소시키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동시 소비가 가능한 성질이다. 문제는 이런 특성 때문에 어느 누구도 생산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가격)은 충분한 공공재 생산에 실패했다.

이에 대한 대안이 국가에 의한 공공재 공급이었고, 이를 위해 만들어진 회사가 바로 공기업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 공기업은 비판과 개혁의 표적이 되고 있다. 즉 정부실패의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주제에서는 ‘민영화론’의 핵심 논리를 뒤집어 보고, 관련된 다양한 관점들을 살펴봄으로써 공기업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

○ 생각의 시작

먼저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의 논리를 살펴보자.

(전략)공기업의 수익은 전기료, 통신료, 지하철 요금이나 정부에서 받는 수수료로 이루어진다. 이들 공기업은 사실 1960∼70년대 주택, 댐, 비료 공장, 발전소, 철도, 도로를 건설하는 등 많은 일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졌고 빚이 계속 늘어난 것이다. 사업을 독점하고 있어 공기업이 만든 물건이나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 해도 국민들이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공공요금은 다른 요금이나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웬만하면 올리지 않도록 정부가 유도하지만, 그 결과 생기는 손해는 정부가 어떻게든 메워 주어야 한다. 또한 공기업은 갈수록 커지는 속성이 있다.

이처럼 공기업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국민 부담을 늘리자 세계 각국은 1980년대부터 공기업 개혁에 나섰다. (후략)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중 일간지 기사] (전략) 공기업의 수익은 전기료, 통신료, 지하철 요금이나 정부에서 받는 수수료로 이루어진다. 이들 공기업은 사실 1960∼70년대 주택, 댐, 비료 공장, 발전소, 철도, 도로를 건설하는 등 많은 일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졌고 빚이 계속 늘어난 것이다. 사업을 독점하고 있어 공기업이 만든 물건이나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 해도 국민들이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공공요금은 다른 요금이나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웬만하면 올리지 않도록 정부가 유도하지만, 그 결과 생기는 손해는 정부가 어떻게든 메워 주어야 한다. 또한 공기업은 갈수록 커지는 속성이 있다.

이처럼 공기업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국민 부담을 늘리자 세계 각국은 1980년대부터 공기업 개혁에 나섰다. (후략)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중 일간지 기사]

○ 그런데…

이러한 배경에서 출발한 공기업 민영화의 실험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민영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도 철도 민영화에 실패한 사례가 있다.

실제로 영국은 민영화 이후 철도 서비스가 유럽에서 가장 형편없는 곳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승객도 크게 줄고, 철도 회사들의 수지도 떨어지고, 또 시설과 서비스는 더 떨어 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급기야 지난 10월 15일 영국 정부는 5년 동안 이뤄진 철도 민영화 실험을 중단하고 다시 공기업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스티븐 바이어스 영국 교통장관은 이날 하원에서 “그동안 철도 운영업체들이 어려울 때마다 수억 파운드씩 공적자금을 지원했으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면서 운영주체를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한 뒤 정부가 직접 통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주간지 기사]

○ 심지어…

스웨덴은 조선 산업을 공기업화했다.

스웨덴 정부는 경쟁력을 잃은 조선 공업을 살리기 위해 1977∼79년에 조선 공업 근로자 전체 임금의 120%를 업계에 보조금으로 주었으며, 정부 고용을 늘려 1987년까지 전체 근로자의 약 33%를 정부 부문에서 흡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스웨덴 정부가 사람을 앉혀 놓고 돈만 뿌린 것은 아니었다. 이들을 복지 요원으로 활용하여 노약자의 가정 진료 횟수를 종전의 배로 늘리는 등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중 일간지 기사]

이상의 자료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공기업의 문제점들이 민영화 이후 더욱 극심한 형태로 재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민영화의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의 경험적 사례들은 ‘민영화론’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후발주자인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국들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재의 생산 문제, 즉 공기업 문제는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까?

○ 또 다른 생각은?

위의 두 주장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국영 기업의 운영과 관련된 상황은 복잡하다. 좋은 성과를 내는 기업도 있고, 나쁜 성과를 내는 기업도 있다. 국영 기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은 분산 소유의 대규모 민간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민영화는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길이 될 수도 있지만, 재앙으로 다가서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필수적인 규제 능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중략) 민영화를 할 때는 신중을 기해서 ‘적절한 기업’을, ‘적절한 구매자’에게, ‘적절한 가격’으로 팔고, 이후로도 그 기업을 ‘적절하게 규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굳이 민영화 방식을 채택하지 않더라도 국영 기업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첫째, 해당 기업이 가진 여러 가지 목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둘째, 감독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다. 셋째, 민간기업과의 경쟁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중략) 결론적으로 말해 국영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단방약’ 같은 해법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국영 기업의 운영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이 했던 “쥐를 잡을 수만 있다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따질 필요가 없다”라는 유명한 말에 깃들어 있는 실용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인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채택한 이후 시장과 정부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해 왔다. 즉 시장이 실패하면 정부로, 정부가 실패하면 다시 시장으로 달려갔다. 오늘날 대세를 이루고 있는 신자유주의도 시계추 운동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를 비롯한 정부 개입의 축소는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정책 방향이다. 이런 점에서 민영화 정책과 관련된 논쟁은 이제까지 자본주의가 걸어 왔던 기계적인 시계추 운동의 궤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속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창선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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