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세력 겨냥한 ‘마지막 대못질’

  • 입력 2007년 12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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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향군 정치활동 금지범위 명문화’ 추진 논란

정부가 재향군인회의 정치활동 금지 범위를 명문화하고 이를 위반하면 제재하는 방안이 포함된 향군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임기 말 보수세력을 겨냥한 ‘마지막 대못질’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임기를 두 달여 남겨 둔 현 정부가 대선 결과에 투영된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국민의 냉엄한 평가까지 무시하면서 최대 보수단체의 손발을 묶겠다고 나선 데는 정략적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도 보수’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 현 정부가 수구세력으로 낙인찍은 보수단체들이 결집해 현 정부의 대북 안보정책의 전면 수정을 요구할 것이고, 더 나아가면 노무현 정부의 정통성마저 훼손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움직임이 좌파정권 10년을 정리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으로 번져 각계로 확산될 경우 진보진영 전체가 수세에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권력 핵심부의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직 국방장관을 지낸 한 예비역 장성은 “보수진영은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현 정부의 그릇된 대북 안보정책을 바로잡으려는 활발한 활동을 펼칠 것”이라며 “이런 면에서 그 구심점이 될 수 있는 향군을 미리 속박해 놓으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 정부가 추진한 ‘퍼주기’식 대북 정책과 자주를 표방한 대미정책을 사사건건 비판해 온 향군은 정부와 범여권 측에서 볼 때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보수세력의 ‘맏형’ 역할을 자임하는 향군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설정 문제 등 주요 안보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대규모 시위와 대국민 성명 발표, 홍보를 주도하며 청와대와 현 정부를 압박해 왔기 때문이다.

향군은 또 역대 군 수뇌들을 폄훼하고 서해 NLL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정부와 범여권으로부터 여러 차례 유무형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시작전권 단독행사(환수) 반대를 위한 500만인 서명운동’에서 박세환 당시 향군 부회장의 성명서가 정치활동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민주노동당은 향군법 폐지안을, 열린우리당은 향군 활동을 제한하는 개정안을 각각 상정했다.

향군을 지도 감독하는 국가보훈처는 박 부회장의 성명서가 정치활동에 해당되는지에 대해 유권해석을 해 달라고 법제처에 요청했다가 거부당하기도 했다.

2005년 국정감사 당시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 등은 ‘국고 지원을 받는 향군이 안보를 명분으로 일반시민 대상의 대규모 집회를 열어 반정부 운동이나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향군의 안보 관련 예산 재검토를 보훈처에 요구한 바 있다.

향군 관계자는 “권력 핵심부가 향군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정권 차원의 치밀한 의도와 준비에 따라 향군법 개악(改惡)을 추진하고 있다는 여러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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