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생각나무]죽음, ‘캄캄한 끝’이기만 할까요

  • 입력 2007년 12월 17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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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무거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죽음’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까 합니다. 어린이라고 해서 반드시 밝고 즐거운 생각만 하라는 법은 없지요. 세상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동화책 가운데 죽음을 소재로 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할아버지의 죽음, 할머니의 죽음, 엄마의 죽음, 아빠의 죽음 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내가 정말 죽기는 죽는 건지, 죽는 순간에 기분은 어떨지,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건지 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속 시원한 대답은 물론 나오지 않습니다. 무릇 모든 일은 직접 겪어 봐야 하는데, 죽음만큼은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죽어 본’ 사람은 없지요. 죽음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과 공포감은 그래서 더 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해 모르니까요.

하지만 사람마다 죽음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태도는 있습니다. 죽음을 삶의 끝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은 다음에 더 행복한 삶이 찾아온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삶과 죽음이 맞물려 있어서 하나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애니의 노래’*는 바로 그런 생각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애니는 나바호족 인디언 소녀입니다. 아메리카 서부의 광활한 사막에서 엄마 아빠 할머니와 오순도순 살고 있지요. 애니는 아침마다 울타리 문을 열어 양들에게 풀을 먹이거나 엄마 아빠의 밭일을 돕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오지요.

애니가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가 누구보다 좋은 친구가 되어 줍니다. 둘은 천막집 구석에서 쥐가 슬금슬금 도망가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웃거나, 옥수수 빵을 놓고 우스갯 소리를 주고받으며 킥킥거리지요. 애니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매일 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을 때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온 가족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지금 짜고 있는 카펫이 완성될 무렵 나는 어머니인 대지로 돌아갈 것이다”라고요. 애니는 놀란 가슴으로 엄마를 쳐다보고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맺힙니다.

‘대지로 돌아간다’는 말은 물론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왜 하늘나라로 간다고 하지 않고 대지로 돌아간다고 한 걸까요?

많은 사람이 우리가 죽으면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즉 몸은 땅에 묻혀도 영혼은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거지요. 하지만 애니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몸과 영혼으로 나누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의 생명은 그냥 자연에서 나와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애니 할머니의 눈으로 보면 삶과 죽음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의 생명이 사라져도 그것은 다른 생명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거니까요. 마치 꽃잎이 지더라도 이듬해 다른 꽃잎으로 피어나는 것처럼, 구름이 강물로 강물이 바다로 바뀌듯이, 자연의 모든 부분은 다른 부분과 이어져 있는 거니까요.

애니 할머니는 그래서 죽음을 예감하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합니다. 옥수수를 갈아 빵을 만들고 땔나무를 모으고 양들을 정성껏 돌보지요. 그러나 애니는 아직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엄마가 짜는 양탄자가 어느 틈에 허리 높이까지 완성되자 마음이 다급해집니다. 순진하게도 애니는 양탄자가 완성되지 않으면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일부러 사고를 치거나 양들을 몰래 풀어 놓거나, 심지어 밤마다 양탄자의 실을 한 움큼씩 풀어내기까지 합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다시 한 번 애니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애니야, 너는 시간을 돌려 보려고 하는 것이란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는 것이야. 태양은 아침에 땅 위에 떠올라 저녁에 땅 밑으로 진단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대지로부터 생겨나 대지로 돌아가는 것이란다.”

애니는 마침내 삶과 죽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삶은 죽음으로, 죽음은 다시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거지요. 애니는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엄마가 해 왔던 것처럼 베를 짜기 시작합니다. 할머니께서 물려주신 막대기로 말이지요.*미스카 마일즈, ‘애니의 노래’(새터·2000년)

김우철 한우리 독서논술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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