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통계 제대로 읽기]자발적-소극적 안락사…

  • 입력 2007년 10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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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산신령이 나타나서 우리나라 사람에게 “네가 원하는 것 세 가지를 주겠다”고 말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건강, 가정의 행복, 경제적 풍요를 주세요”라고 답할 것이라는 통계자료가 있다(<표1> 참조).

그런데 이 세 가지는 한순간에 날아갈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 원인 중 27%를 차지하며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는 질병인 암 때문이다(<표2> 참조). 2006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약 6만6000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최소한 ‘자발적이면서 소극적(치료 중단 등)인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주장이 대두됐다. <표3>을 중심으로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모든 인간의 생명은 본인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면, 인간답게 죽을 권리도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죽음도 삶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이 원한다면 소극적 안락사만이라도 허용해야 한다. 물론 본인의 의사가 확실한지를 평가하기 위해 의사무능력 상태를 대비한 사전의사결정(advance directives) 혹은 자기 생명에 관한 유언(living will) 등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둘째, 암은 극심한 고통과 더불어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준다. 환자와 가족은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을 찾아 유명 의사의 진료를 받으며, 없는 돈까지 끌어 모아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받는다. 암 환자, 특히 말기 암 환자의 경우 의료비 지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국립암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암 환자는 사망 전 1년 동안 치료비, 간접비용 등을 포함해 1인당 평균 2780만 원 정도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의료비 지출의 경우 사망 전 마지막 한 달 동안 36.3%를 쓴다. 간접비용 역시 사망 전 마지막 한 달 동안 전체 금액의 20.7%를 쓴다. 그리고 이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해마다 3만여 가구가 그동안 모아둔 저축의 대부분을 쓰고, 1만여 가구는 사는 집을 줄여서 그 비용을 마련한다. <표1>에서 소득이 낮을수록 건강을 강조하는 비율이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표3>에 있는 것처럼 경제적 이유만으로 죽음에 내몰리는 경우는 사전에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저소득층을 위한 건강보험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말기 암 환자에게 행해지는 치료행위는 회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지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환자 본인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은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죽음을 맞기를 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 가거나, 의식이 상실된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끌며 천천히 죽어 간다. 말기 암 환자가 이런 경우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니 비록 극심한 고통이지만 참으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현대의술에 의한 생명 연장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회생 가능성’과 ‘연명 가능성’을 구별해야 한다.

말기 암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극심한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면, 본인이 원할 경우 생명 연장 시술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소극적 안락사를 제도화해야 한다(<표4> 참조).

윤상철 경희여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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