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부글부글… 법원 “늑장,부실수사 반성하라”

  • 입력 2007년 9월 2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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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씨 구속영장 기각으로 검찰과 법원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정상명 검찰총장(가운데)이 20일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검찰 수뇌부와 함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신정아 씨 구속영장 기각으로 검찰과 법원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정상명 검찰총장(가운데)이 20일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검찰 수뇌부와 함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촬영 :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

■ 정윤재씨 영장도 기각… 法-檢갈등 새 국면

수뇌부 자제요청에 수그러들던 검사들 다시 격앙

법원 “영장자체로 구속무리… 보강후 재청구하라”

구속영장 기각을 둘러싼 검찰과 법원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고 있다.

신정아 씨에 이어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마저 기각되자 검찰은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어렵게 됐다”며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법원은 “제기된 의혹이 많더라도 구속 사안에 해당하지 않으면 구속시킬 수 없다”며 검찰의 이의 제기는 ‘월권’이라고 반격했다.

1년여 전 론스타 수사 때 촉발된 1차 법-검 갈등 때보다 양측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게 파일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 “어떻게 수사하라는 말이냐”=신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18일부터 검찰 내에서는 “법원이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검찰 수뇌부가 연일 대책 회의를 열었고 검찰은 견해 발표를 통해 ‘사법정의 포기’ ‘사법부의 무정부 상태’라는 원색적 표현으로 법원을 비판했다.

일부 젊은 검사는 “판사 한 명한테 검찰 전체가 휘둘려도 되는 것이냐” “차라리 구속제도를 없애자”는 등 법원을 강력하게 성토했다.

하지만 검찰이 영장기각 문제에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사건의 본질보다는 ‘법-검 갈등’에 초점이 맞춰지는 바람에 여론이 나빠지자 20일 정성진 법무부 장관과 정상명 검찰총장이 일선 검찰에 자제를 당부하면서 검찰 내부는 일단 진정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정 장관은 이날 검찰의 견해 발표에 대해 “주의를 주고 검찰이 의연하고 철저하게 수사에 임하도록 지시할 생각”이라고 말했고, 정 총장도 “법-검 갈등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 국민께 죄송하다. 견해의 차이일 뿐 갈등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대신 정 총장은 영장제도 자체에 대한 개선을 주문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하고 “영장항고제는 꼭 있어야 한다”며 “국회 학계 언론 등의 주최로 영장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대토론회를 하고 국회를 열어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원이 인정하지 않고 있는 영장에 대한 준(準)항고가 가능한지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러나 이날 밤 법원이 정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마저 기각하자 분위기는 다시 급변했다. 대검찰청은 “공식적으로 언급할 말이 없고 대책회의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확전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일선 검사들은 부글부글 끓었다. “이래서는 권력형 비리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자조와 불만이 다시 터져 나왔다.

한 중견 검사는 “더는 말도 하기 싫다”며 “국민은 의혹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데 법원은 형식 논리에만 집착해 국민의 기대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경지검의 중간 간부는 “검찰도 가능하면 피의자를 구속하지 않고 싶지만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때 핵심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면 다른 관련자들과 계속 입을 맞추고 증거 인멸을 시도하기 때문에 사실상 수사는 물 건너 간다”고 지적했다.

▽법원 “수사를 왜 못한다는 것이냐”=법원은 신 씨나 정 전 비서관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 자체만 놓고 보면 구속은 무리라는 반응이다.

더욱이 영장을 심사해 발부하거나 기각하는 것은 법관의 고유 권한이자 책임인데 검찰이 정면으로 반발하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검찰은 구속을 안 하면 수사를 못할 것처럼 얘기하는데 신 씨나 정 전 비서관을 구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수사에 문제가 생기는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여론을 의식해 영장에 적시되지 않은 부분까지 판단하는 판사가 있다면 오히려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소장 판사는 “영장재판도 다른 재판과 마찬가지로 법관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하는 것이고 꼭 필요하다면 검찰이 내용을 보강해서 영장을 재청구하면 된다”며 “정 전 비서관의 경우 뚜렷한 물증도 없고 도주의 우려도 없어 보이는데 법관이 어떻게 구속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검찰이 먼저 부실 수사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중견 판사는 “신 씨 사건이나 정 전 비서관 사건이나 검찰이 초기에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다가 뒤늦게 여론에 밀려 수사한 것 같다”며 “왜 수사가 잘 안 되면 법원 탓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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