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이들의 비범한 노력… ‘숨은 재능’ 깨웠다

  • 입력 2007년 7월 2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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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기성세대와 차별되는 젊은 재능이 집단적으로 발현하는 시대가 있다. 프랑스의 작가 장 콕토는 이를 ‘무서운 아이들’이란 뜻의 ‘앙팡테리블’이라고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일단의 영국의 젊은 작가들이 현실 비판의 목소리를 낼 때는 이를 ‘성난 젊은이’라는 뜻으로 ‘앵그리 영 맨’이라 불렀다. 21세기 한국에서도 그런 젊은 재능의 집단 발현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서운 아이들’도 아니고 ‘성난 아이들’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미쳤고, 기성세대에 주눅 들지 않고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밝고 당당한 자신감으로 무장돼 있었다.》

스포츠, 음악, 무용, 수학, 과학, 문학, 연극, 영화, 도예, 요리, 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들은 불꽃처럼 환하고 정열적이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따뜻하게 비출 줄 아는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20회에 걸쳐 본보가 연재한 ‘21세기 新천재론’의 주인공들. 어쩌면 한국사에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할 만큼 조기에 재능을 꽃피운 그들의 공통점과 특징은 무엇일까. 밝고 환하고 영민하다는 뜻에서 ‘브라이트 제너레이션(Bright Generation)’이라 부를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세대

가장 큰 공통점은 그들 모두 좋아하는 것에 미쳤다 할 만큼 엄청난 열정을 지니고 고도의 집중력을 보인다는 점이다.

국수(國手) 윤준상(20) 9단은 1000국은 둬야 1급 수준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밤낮으로 바둑을 둬 결국 1000국을 채워 주변을 경악시켰다. 고등학생의 나이로 세계로봇대회에 출전한 강태호(17) 군은 다섯 살 나이로는 벅찬 조립식 완구를 만드느라 밤을 새우다 결국 천식에 걸렸다. 11세 나이에 장장 9시간 20분의 판소리 완창에 성공한 김주리(15) 양은 이미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리꾼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한다는 토혈을 경험할 만큼 소리 연습에 매진했다.

짧은 시간에 두각을 나타낸 신천재들도 경이로운 몰입의 힘을 보여 주긴 마찬가지였다.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당선한 홍지현(19) 씨는 연극을 처음 본 뒤 1년간 한 달 평균 12편씩 150편 가까운 연극을 보고 100여 편의 희곡을 독파한 뒤 처음 쓴 희곡으로 최연소 당선자의 영예를 안았다. 요리 입문 1년여 만에 5대 국가조리사 자격증 시험에 모두 합격한 노유정(12) 양은 요리 관련 문제집과 책을 달달 외우고 3, 4차례의 해외 요리 연수까지 혼자 찾아다니며 한 우물을 파고들었다.

○ 재능은 다중지능의 오묘한 조화의 결과

문용린 서울대 교수팀이 개발한 대교심리진단센터의 다중지능(MI)적성진로진단 검사결과에 따르면 신천재들은 다중지능 중 해당 분야에 필요한 지능의 점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수학과 과학 영재들은 하나같이 논리수학지능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문학·연극·영화 분야 신천재들은 한결같이 언어지능과 공간지능이 높았다. 바둑 분야 신천재인 윤준상 9단의 경우 논리수학지능과 공간지능이 함께 높은 것으로 조사돼 바둑이 역시 수읽기와 포석의 게임임을 보여 줬다.

놀라운 점은 그들의 재능을 빚어내는 다양한 다중지능의 하모니에 있었다. 신천재들은 이과는 수학, 문과는 언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크로스오버 현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금상을 수상한 수학 영재 이석형(16) 군은 논리수학 외에도 언어와 음악 분야 점수가 고르게 높았다. 또 영화 시나리오를 통해 예일대에 입학한 구혜민(19) 씨와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 홍지현(19) 씨 같은 예술천재들은 언어 못지않게 논리수학 지능도 높았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 신천재 남예슬(16) 양은 자연친화, 음악, 신체운동, 인간친화, 논리수학, 언어 지능이 모두 상위 3%에 드는 진정한 다중 천재로 조사돼 모두를 놀라게 했다.

문 교수는 “다중지능의 매력은 해당 분야의 타고난 지능만으로 재능이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다중지능의 조합으로 빚어내는 무지갯빛 스펙트럼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 재능은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빚어지는 것

MI적성진로진단 검사 결과가 반드시 신천재들의 타고난 재능에 부합한다고만 말할 수 없음은 그들이 엄청난 연습벌레라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피겨스케이팅 스타 김연아는 신체운동지능이 상위 10.5% 정도에 불과했지만 엄청난 연습과 노력을 통해 세계 정상에 올랐음이 확인됐다. 빙상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그녀의 유연한 근육은 원래 훈련을 조금만 소홀히 해도 위축되는 핸디캡이었다. 또 화려한 표정 연기는 거울을 보며 ‘천의 얼굴’을 빚어낸 연습의 산물이었다. 대신 그녀는 ‘실수 매니지먼트’라고도 불리는 피겨스케이팅에 필요한 절대 대범함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발레리노 이동훈은 두 다리를 180도가 되게 하는 발레의 기본 동작(턴아웃)에 몹시 불리한 체형인 데다 평발이었다. 비보이를 하면서 발달한 상체 근육과 튀어나온 무릎 등 발레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체형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2배에 가까운 훈련량으로 이를 극복했다. 반대로 발레리나로 좋은 체형을 지닌 박세은은 어린 시절 무용동작 순서를 잘 못 외우고 무용기술도 떨어졌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발레에 대한 애정과 느리지만 착실한 훈련을 통해 로잔콩쿠르 1위의 영예를 안았다.

○ 자율적 교육을 실천한 부모

교육학자들은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선 아이를 박물관에 데려가 그들이 어떤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관찰하라고 조언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앞장서서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관심을 보이는 주제를 찾아갈 때까지 가만히 뒤에서 지켜본 뒤 그들이 거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천재의 부모들은 대부분 이 원칙에 부합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절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강요하지 않고 최대한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관찰하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빅뱅의 비밀’이란 장편 SF소설을 쓴 김활(13) 군의 부모는 김 군의 상상력이 최대한 확장되도록 방 안이 장난감으로 난장판이 되어도 치우지 않았고,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 자유방임의 교육원칙을 실천했다. 강태호 군과 구혜민, 홍지현 씨 역시 학교 교과과정에 충실하면서 다른 친구들이 학원 다니는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했다.

부모들의 인성교육도 한몫했다. 뉴욕 필하모닉 영 아티스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지용(김지용·16)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이민 가 세탁소에서 힘겹게 일하면서도 ‘네 재능은 네 것만이 아니니 이웃을 위해 쓰라’는 말로 아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석형 군의 부모는 어려운 어휘를 많이 쓰는 이 군이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지 않도록 학교에서 쓰는 말과 집에서 쓰는 말을 구분하게 하는 등 ‘평범한 아이’로 크게 하려고 애끓는 노력을 기울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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