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아차’ 하는 순간 ‘쿵’

"이런 도로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죠."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로터리를 찾은 김홍상 명지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무려 5개 방면의 도로가 맞물려 있는 영등포로터리는 2005년 한 해 동안에만 83건의 교통사고가 나 전국 최다 교통사고 지역이란 '오명'을 안았다.

김 교수는 "이곳에서 일어난 사고는 그 책임을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돌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그는 "근본적으로 도로구조에 문제가 있으니 사고가 많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본보는 지난 6년간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난 지역 상위 5곳 가운데 거의 매년 순위에 오른 도로를 뽑아 교통 전문가와 함께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해야할 것인지 현장 취재에 나섰다.

교통사고 '단골지역'으로 뽑은 곳은 영등포로터리와 서울 신촌오거리, 대구 두류사거리 등 3곳.

왜 이들 지역에선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현장 취재에는 김 교수와 임삼진 한양대 교통공학과 교수,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 김기혁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 등 4명이 동행했다.

●무계획 도로의 표본, 영등포교차로

여의도와 대방역, 신길역, 영등포역, 영등포시장 방면 등 무려 5개의 방향으로 도로가 갈리는 영등포교차로는 말 그대로 '복잡다단'하다.

더욱이 편도 7개 차로 중 5개 차로는 같은 방향으로 향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 중 3개 차로는 여의도, 2개 차로는 대방역 방향으로 나눠져 있다.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는 길을 잘못 들기 십상이다. 이는 결국 운전자의 무리한 차선 변경과 이로 인한 빈번한 접촉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영등포교차로를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와 영등포구청도 '교통사고 잦은 곳 1위'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고심하고 있지만 복잡한 구조 탓에 쉽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영등포구청의 한 교통담당 공무원은 "교통공학을 전공한 사람들 사이에서 영등포교차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겐 '교통 노벨상'을 줘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 도로 구조를 뒤집는 대규모 공사가 어렵다면 부분적인 개선작업이라도 하루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도로를 새로 만들 때마다 무조건 기존 도로와 연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작용한 탓에 이런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졌다"며 "영등포교차로는 무계획적인 도로의 표본"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과감하게 양끝 2, 3개 차로를 없애는 '구조조정'만이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여의도 방면 3개 차로와 영등포시장 방면 2개 차로를 아예 없애고 우회도로로 연결해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

임 교수도 이런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여의도, 영등포시장 방면 차로를 차단할 경우 교차로 면적이 줄어들어 접촉 사고의 빈도를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홍상 교수는 "교차로 곳곳에 표지판이 설치돼 있으나 오히려 중구난방이어서 운전자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혼란을 줄 수 있다"며 "당장 표지판부터 전면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적으로 7개 차로 어디에 있든 각각의 차로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대형 표지판을 새로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표지판 설치나 교통경찰관 상시근무 등의 방법은 일시적으로 교통사고를 줄일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며 "몇 년간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지하차도를 만들어 교차로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김동욱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