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5개월 앞두고 또…” 수험생들 당혹

  • 입력 2007년 6월 16일 03시 01분


코멘트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 주재로 15일 열린 대학입시 관련 관계장관회의 도중 김신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신원건 기자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 주재로 15일 열린 대학입시 관련 관계장관회의 도중 김신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신원건 기자
특목고 괜찮을까교육인적자원부가 대입에서 내신 반영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15일 서울 송파구 정신여고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특수목적고 설명회에 1800명이 넘는 학부모와 학생이 몰려 전형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김재명 기자
특목고 괜찮을까
교육인적자원부가 대입에서 내신 반영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15일 서울 송파구 정신여고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특수목적고 설명회에 1800명이 넘는 학부모와 학생이 몰려 전형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김재명 기자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5개월 앞두고 학교생활기록부(내신)의 실질반영비율을 높이도록 요구해 2008학년도 대입 전형에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내신의 실질반영비율과 산출 방법까지 제시해 대학입시 자율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고등학교의 내신 성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대학의 움직임이 강경 조치를 불렀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무엇이 달라지나=교육부는 현재 고교 3학년 학생들이 고교 1학년이던 2005학년도부터 고교의 ‘성적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학생부 표기 방식을 석차백분율과 평어(수우미양가)라는 절대평가에서 9등급 상대평가로 바꿨다. 대학에게는 내신 반영률을 50% 이상으로 높이도록 요청했다.

대학들은 고교의 내신 성적이 학교 간 학력 차를 반영하지 못해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내신에 높은 기본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실질반영비율을 낮춰 왔다. 2007학년도의 경우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은 대부분 10% 이하인 것으로 분석됐다.

교육부는 올 입시에서 내신 성적을 반영할 때 9등급을 분리해 등급별로 일정한 점수 차를 두고 실질반영비율을 명목반영비율과 비슷하게 맞추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학생부의 위력이 지금보다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정 대학이나 모집단위에는 수능 등급이 비슷한 학생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내신이 당락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중앙학원 김영일 원장은 “내신의 실질반영비율이 50% 정도 되면 대학이 사실상 내신으로 신입생을 뽑는 것”이라며 “수능 1등급에서 최대 표준점수가 11점 차가 나도 같은 등급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수능보다 내신 등급의 영향력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험생의 엇갈린 희비=일단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와 학력이 높은 서울 강남 지역의 고교와 자립형사립고 등이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내신 불이익이 가중됐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경기 지역 한 외고의 교사는 “수능 모의평가에서 1등급을 받았지만 내신이 3, 4등급인 학생이 적지 않다”면서 “내신에서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어려워 1, 2학년생 중에 일반고로 전학하거나 자퇴하는 학생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내신 성적이 결정된 재수생들은 낙담하고 있다. 서울대와 고려대는 3수생 이상만 수능 성적에 비례한 비교내신제를 적용하고 연세대는 방침을 발표하지 않았다.

지난해 고려대 의대에 낙방한 재수생 이모(20) 씨는 “수능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재수생에게는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반면 모의 수능 점수가 낮더라도 내신 등급이 유리한 지방 고교 등에서는 이번 조치가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광주 모 여고의 정모(31·여) 교사는 “지방 학생들은 내신이 좋아도 수능은 2∼5등급인 학생이 적지 않다”면서 “내신은 1등급이지만 모의 수능 성적이 들쑥날쑥한 수험생에겐 유리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당황한 대학들=2008학년도 입학 전형안을 짜놓은 대학들은 날벼락 같은 조치라며 당황해하고 있다.

수시모집은 내신 중심, 정시모집은 수능 중심으로 기본 틀을 짜놓은 상황에서 정시모집에서도 내신 성적이 중요해짐에 따라 기존 전형안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주요 사립대들은 수능이 등급제로 바뀌어 변별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 간 학력 격차가 반영되지 않은 내신의 실질반영률을 50%까지 높이면 학생 선발이 어려워진다고 반발했다.

교육부가 강공으로 나오자 대학들은 일단 말을 아끼는 가운데 “현실적으로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기는 어렵다”며 관망하는 분위기다.

주요 대학 입학처장들은 교육부의 진의가 뭔지, 어떤 후속 조치를 할지 등을 지켜본 뒤 9월경에나 기본점수 등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내신의 실질반영비율을 높이려면 내신 기본점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수능이나 논술 등 다른 전형요소의 기본점수를 높여도 같은 효과가 발생하므로 우선 가능한 방법들을 검토해 보겠다는 것.

대학들이 내신 등급 간 점수와 다른 전형요소와의 반영 비율을 얼마로 정하느냐가 관건이다.

서울대는 지난해 입시에서 실질반영비율과 명목반영비율이 비슷했다며 산출 방식은 큰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시모집에서 내신 1, 2등급에 모두 만점을 주지 않으면 다른 전형요소의 변별력이 떨어져 이 방침은 유지한다고 밝혔다.

▽교육부 주장의 문제점=교육부는 내신 실질반영비율이 50% 이상이면 내신이 당락을 좌우할 것이란 전망에 대해 “학교 간 학력 차로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는 학생은 수능 성적과 대학별 고사로 보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학력 격차를 인정하지 않다가 내신 강화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인정한 셈이다.

교육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올해 입시부터 수능이 등급제로 바뀌어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이 제공된 지난해와는 달리 대학이 점수 보정 방법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수능이 같은 등급이라도 점수 차가 크고, 표준점수가 높더라도 등급이 역전되는 현상이 빚어져 수능 점수를 통한 보정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또 대학별 고사도 교육부가 논술 가이드라인을 정해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어 논술을 통해 변별력을 높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게 대학 측의 주장이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청와대 지시로 ‘관계장관회의’까지 연 이유는?▼

정부가 15일 이례적으로 총리가 주재하는 대학입시 관계 장관회의를 소집하는 등 초강력책을 쓴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는 대학들이 학교생활기록부의 영향력을 대폭 축소하면 참여정부가 중요한 국정과제로 추진해 온 학생부 중심의 대학입학제도인 2008학년도 입시안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판단한 듯하다.

정부는 대선 정국을 맞아 주요 대선주자들이 대학입시 자율화를 주장하는 분위기를 타고 학생부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중심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려는 대학들의 움직임을 조기에 제압하고 나섰다. 이는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사립대가 올해 초 수능 우선선발 전형을 신설하자 여러 대학이 뒤따라 우선선발 전형을 도입했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서울 모 사립대의 입학처장은 “정부가 이번에도 밀리면 2008 대입정책의 전반이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회의는 교육부의 건의가 아닌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갑자기 소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신 4등급까지 만점을 주려는 사립대들의 방침 때문에 일선 고교가 매우 혼란스럽다’는 정보기관들의 보고도 정부의 강경책에 한몫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