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통계 제대로 읽기]‘전화 받지 않을 권리’

  • 입력 2007년 5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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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크게 늘었다. <표1>을 보면 연도별 휴대전화 가입자 수의 증가 추이를 알 수 있다. 2007년 3월 말 현재는 4110만1167명(정보통신부 ‘유·무선 통신서비스 가입자 현황’ 참고)으로, 전 인구가 약 4800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치다. 이 때문에 거리에서 공중전화가 사라졌고,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과 통화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열렸다.

휴대전화, 초고속 인터넷 등의 영역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어떤 나라보다 훌륭한 인프라(하부구조)를 구축하고 있다(<표2> 참조). 휴대전화나 인터넷은 많은 사람에게 많은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훌륭한 문명의 이기(利器)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보 확산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이젠 군사 쿠데타(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가 일어나기도 어렵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다. 통신의 발달은 분명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이런 편리함을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들도 많다. 예를 들면 가정의 가계 소비지출 중 통신관련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아졌다(<표3> 참조). 자신의 가정에서 휴대전화 사용료로 지출하는 총통신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계산해 보면 이런 현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비록 경제적 부담이 늘었지만 이는 편리함으로 상쇄시킬 수 있다. 이미 휴대전화는 집에 두고 오면 왠지 불안함을 느끼게 하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대전화가 반드시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것만은 아니다. 퇴근 시간 이후에도 업무관계로 계속 전화가 온다고 상상해 보자. 내가 어디에 있든 휴대전화를 통해 상대방은 나를 찾는다. 만약 받지 않으면 오히려 짜증을 낸다. 전원을 꺼놓으면 ‘이상한 생각’을 한다. 일단 휴대전화를 사면 ‘항상 켜놓아야 할 의무’를 갖게 된다. 이제는 화상전화까지 등장하여 더욱 개인의 삶을 옥죄고 있다.

“네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나는 안다.” 정보통신(IT) 강국인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타인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2005년 8월에서 2006년 7월까지 11개월간 휴대전화 위치정보 조회 건수는 1억8000만 건에 달한다. 휴대전화 가입자가 1인당 평균 4.5회씩 조회를 하거나 당한 셈이다. 이처럼 휴대전화로 위치를 추적하거나, 교통카드 사용 명세로 그 사람의 행동반경과 이동시간 등을 파악하는 것, 신용카드 사용 명세를 보고 타인의 취향까지도 알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생활 침해 문제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처럼 사생활 침해가 심해지면서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최근 “6월부터 개인 위치정보를 제공할 때마다 문자메시지로 본인에게 통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위치 추적이 사생활 침해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에 따른 조치다.

진정한 IT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적·도덕적 측면이 중요하다. 휴대전화 사용과 관련된 ‘문화 지체 현상’에 대한 염려가 사라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 휴대전화를 통한 위치 추적을 함부로 하면 큰일 납니다. 만약 동의를 얻지 않고 위치 추적을 했다면 2005년 신설된 ‘위치정보 보호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윤상철 경희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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