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디디: 넌 시인이 될걸 그랬군.

고고: 나는 시인이었어.(자신의 누더기 옷을 가리키며) 이것만 봐도 분명해.

디디: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네 발은 좀 어때?

고고: 눈에 띄게 부었어.

디디: 아, 그렇지. 두 도둑놈 이야기를 하다 말았군. 그 얘기 생각나?

고고: 아니.

디디: 내가 얘기해 줄까?

고고: 관둬.

디디: 얘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날 거야. 두 도둑이 우리 구세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어.

고고: 우리의 뭐라고?

디디: 우리의 구세주. 도둑놈 두 명. 한 명은 구원 받았고, 한 명은…, 저주를 받았어.

고고: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어?

디디: 지옥으로부터.

고고: 나는 가겠네.

여러분이 보기에 고고와 디디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습니까? 얼핏 보면 한 사람은 질문을 던지고 한 사람은 대답을 하고 있어서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두 사람은 서로 소통되고 있지 않습니다. 혹시 우리가 나누고 있는 대화도 이랬던 게 아니었을까요?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입니다.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에스트라공)와 디디(블라디미르)의 이야기지요. 작품의 첫 페이지에는 ‘2막으로 된 희비극’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겪는 상황들은 우리가 보기에 우스꽝스럽지만, 두 사람에게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고도’를 기다리는 일이지요.

디디: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고고: (절망적으로) 아! 틀림없이 여기였나?

디디: 뭐라고?

고고: 우리가 기다리던 곳이 말야.

(중략)

고고: 그는 여기로 와야 해.

디디: 꼭 온다는 말은 안 했어.

고고: 그런데 혹시 안 오면?

디디: 내일 또 와봐야지.

고고: 그래도 안 오면 모레도 와보고?

디디: 그렇겠지.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고 있지만 왜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그가 확실히 올지, 안 올지도 모릅니다. 또한 어디로 오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웃기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또다시 우리는 우리 삶을 반추하게 됩니다. 우리도 ‘고도’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기다림’이 없는 인생은 없을 겁니다. 그 ‘고도’는 성공일 수도 있겠고,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다 지치면 다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고고: 당장 목매어 죽어보세!

(중략)

고고: 각별한 기회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는 기회가 거의 없을걸.

디디: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떡하지?

고고: 아무 짓도 하지 말자고. 그게 제일 안전해.

결국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계속 고도를 기다립니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이렇게 무력합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에서 도피하려는 행위도 무의미하게 끝나고 맙니다. 바로 대부분의 우리가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고고와 디디에게서 실제 세상 사람들의 삶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모순되고, 소통 불가능하고, 목적이 분명치 않고, 그래서 절망적인 우리들의 삶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산다는 것으로부터 도피하겠습니까? 고도가 올 때까지 쭉 기다려보겠습니까? 아니면 지금까지 제가 얘기한 사실을 부정하겠습니까?

이수봉 학림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