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 나는 시인이었어.(자신의 누더기 옷을 가리키며) 이것만 봐도 분명해.
디디: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네 발은 좀 어때?
고고: 눈에 띄게 부었어.
디디: 아, 그렇지. 두 도둑놈 이야기를 하다 말았군. 그 얘기 생각나?
고고: 아니.
디디: 내가 얘기해 줄까?
고고: 관둬.
디디: 얘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날 거야. 두 도둑이 우리 구세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어.
고고: 우리의 뭐라고?
디디: 우리의 구세주. 도둑놈 두 명. 한 명은 구원 받았고, 한 명은…, 저주를 받았어.
고고: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어?
디디: 지옥으로부터.
고고: 나는 가겠네.
여러분이 보기에 고고와 디디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습니까? 얼핏 보면 한 사람은 질문을 던지고 한 사람은 대답을 하고 있어서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두 사람은 서로 소통되고 있지 않습니다. 혹시 우리가 나누고 있는 대화도 이랬던 게 아니었을까요?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입니다.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에스트라공)와 디디(블라디미르)의 이야기지요. 작품의 첫 페이지에는 ‘2막으로 된 희비극’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겪는 상황들은 우리가 보기에 우스꽝스럽지만, 두 사람에게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고도’를 기다리는 일이지요.
디디: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고고: (절망적으로) 아! 틀림없이 여기였나?
디디: 뭐라고?
고고: 우리가 기다리던 곳이 말야.
(중략)
고고: 그는 여기로 와야 해.
디디: 꼭 온다는 말은 안 했어.
고고: 그런데 혹시 안 오면?
디디: 내일 또 와봐야지.
고고: 그래도 안 오면 모레도 와보고?
디디: 그렇겠지.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고 있지만 왜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그가 확실히 올지, 안 올지도 모릅니다. 또한 어디로 오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웃기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또다시 우리는 우리 삶을 반추하게 됩니다. 우리도 ‘고도’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기다림’이 없는 인생은 없을 겁니다. 그 ‘고도’는 성공일 수도 있겠고,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다 지치면 다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고고: 당장 목매어 죽어보세!
(중략)
고고: 각별한 기회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는 기회가 거의 없을걸.
디디: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떡하지?
고고: 아무 짓도 하지 말자고. 그게 제일 안전해.
결국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계속 고도를 기다립니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이렇게 무력합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에서 도피하려는 행위도 무의미하게 끝나고 맙니다. 바로 대부분의 우리가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고고와 디디에게서 실제 세상 사람들의 삶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모순되고, 소통 불가능하고, 목적이 분명치 않고, 그래서 절망적인 우리들의 삶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수봉 학림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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