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박물관이 살아있다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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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은 이 영화를 ‘별 의미 없이 마냥 즐겁기만 한 영화’로 생각진 않나요? 하지만 이 영화, 그리 만만하게 볼 영화가 아닙니다. ‘박물관 전시물들이 밤만 되면 되살아난다’는 동화적인 상상 속에는 박물관과 인류 역사를 바라보는 비판적이고도 풍자적인 시각이 살짝 숨어 있으니까 말이죠.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Night at the Museum)’ 얘깁니다.

[1] 스토리 라인

사업 실패를 거듭하는 이혼남 래리(벤 스틸러). 그의 유일한 낙은 재혼한 전처가 양육 중인 자신의 아들 니키를 만나는 일입니다. 래리는 아들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야간 경비원으로 취직을 하죠.

하지만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요. 박물관 근무 첫날 밤, 공룡 화석이며 박제된 매머드며 원시인 모형과 같은 온갖 전시물들이 살아나 박물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겁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물관의 나이 든 동료 경비원들은 전시품을 몰래 빼돌려 큰돈을 벌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래리. 그러나 그는 미니어처인 카우보이 제이드와 로마황제 옥타비아누스의 도움을 받아 탐욕스러운 경비원들을 혼내주고 박물관의 평화를 되찾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아들에게도 다시 믿음직한 아버지가 되는 건 물론이고요.

[2] 핵심 콕콕 찌르기

궁금해요. 왜 하필 이 영화는 박물관을 배경으로 했을까요? 대형 백화점이나 장난감 가게에서 온갖 상품이 밤마다 살아나는, 더 재미난 설정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건, 이 영화가 박물관이란 공간적 배경을 통해 역사와 박물관에 대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영화의 주장은 박물관 안내원 레베카의 말 속에 압축돼 있습니다. “박물관에선 역사가 되살아난다!” 그렇습니다. 박물관은 수많은 전시물을 매개로 해서 역사라는 ‘과거’를 관람객이라는 ‘현재’와 연결시켜 주는 타임머신 같은 존재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박물관에서 인류의 역사를 보고 배움으로써 관람객은 지금 이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갈 실마리를 얻을 수가 있죠.

하지만 영화 속 박물관의 현실은 어떤가요? 권위적인 박물관장은 관람객들이 숨소리도 내지 못할 정도로 ‘차갑고 근엄한’ 박물관이 되기만을 바라죠. 인디언 여성(인형)인 ‘사카주웨아’를 둘러막은 견고한 유리벽이 상징하듯, 전시품과 관람객 사이의 소통은 단절돼 버렸습니다. 박물관이 화석화된 역사만을 보관하고 있는 ‘죽은 공간’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죠.

맞습니다! 이 영화는 전시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의 모습을 통해, 전시물과 관람객이 대화하고 과거와 현재가 교감을 나누는 그런 박물관이 지금의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이른바 ‘살아 있는’ 박물관 말이죠.

박물관에서 일어나는 난장판을 수습하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역사책을 들여다보던 래리. 그가 전시물 하나하나에 얽힌 애틋한 사연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관람객이 그저 지나가는 구경꾼으로서가 아니라 역사를 향한 뜨거운 가슴과 진정한 호기심을 가진 하나의 인간이기를 이 영화는 소망하고 있는 것이죠.

[3] 종횡무진 생각하기

여러분, 혹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나요? “왜 하필 래리는 전시물의 탈출을 막는 임무를 맡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죠. 알고 보면, 경비원으로서 래리가 수행해야 할 임무에는 가장(家長)으로서 래리가 느끼는 절실한 심정이 교묘하게 포개져 있답니다.

생각해 보세요. 전시물이 박물관 밖으로 탈출할 경우 래리는 직장을 잃게 됩니다. 직장을 잃으면 떳떳한 아버지가 될 수 없으니, 결국 래리는 아들을 더는 보지 못하게 되죠.

여기서 우리는 절묘한 접점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전시물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경비원으로서의 래리의 처지는, 아들 니키가 가족(혹은 부자관계)이라는 테두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아버지로서의 래리의 심정과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지켜야 할 대상’이란 공통점을 가진 박물관과 가족은 래리에게 있어 모두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던 거죠. 소통이 증발된 박물관의 모습은 대화가 사라지고 공중분해될 위기에 놓인 래리 가족의 처지와도 겹쳐집니다.

아, 알면 알수록 장난이 아닌 영화네요.

여러분, 영화 속 루스벨트 밀랍인형(로빈 윌리엄스)을 기억하시죠? 무려 50년간 그는 건너편에 전시된 인디언 여성 사카주웨아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그녀를 사모해 왔습니다. 어쩌면 사랑은, 많은 말이 필요치 않은 건지 모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용기지만, 말하지 않고 기다리는 건 더 큰 용기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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