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박태원 ‘천변풍경’

  • 입력 2007년 4월 10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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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과거와 그 속의 사람들 한번 만나보세요

봄이 왔습니다. 거리에는 완연한 봄볕이 가득합니다. 이런 날은 산책을 해도 참 좋을 것 같군요.

여러분, 새로 열린 청계천에 가 본 적이 있나요? 2003년 즈음까지 상가가 밀집하고 도로가 복잡하게 얽힌, 이름만 ‘청계천(淸溪川)’인 거리를 지나가 본 사람이라면 그곳에 개천(開川)이 생긴다는 것을 믿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2005년 가을, 서울의 도심을 꿰뚫고 흐르는 물이 열렸습니다. 사람들은 어쩌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인간의 힘에 놀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 이전에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는 ‘청계천(淸溪川)’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청계천은 조선이 건국되기 이전부터 서민들의 생활 터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은 1950년대 중반, 이 나라에서 청계천은 가난함과 불결함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피란민들과 도시의 빈민들은 청계천 주위에 판잣집을 지은 채 삶을 이어갔고, 청계천은 급속히 오염되어 갔습니다. 여름이면 하천의 물이 불어 홍수가 나기 일쑤였죠. 결국 없어져야 할 공간이 되고 만 청계천은 흙으로 메워져 도로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청계천의 모습이 변한다고 하여 청계천의 과거가 시간 속으로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한 작가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청계천의 과거를 사진처럼 담아 한 편의 소설로 남겨 놓았습니다. 박태원의 ‘천변 풍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청계천의 주변 풍경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청계천의 한 빨래터에서 아낙들은 모여서 빨래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들은 많은 소문을 공유하고 있고, 슬픔과 기쁨의 감정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비록 빨래터의 주인은 정해져 있고, 이곳에 모이는 이들은 돈을 내야 빨래터를 이용할 수 있지만 말이지요.

도시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 이들 사이에 엮어진 소통의 끈은 그저 한순간의 흥미로운 잡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심어린 관심과 염려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웃의 귀한 딸이 고된 시집살이를 하는 것을 함께 애통해 하고, 시골에서 맨몸으로 올라와 어려운 타향살이를 시작한 젊은 과부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죠.

작품은 단순히 청계천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천변의 풍경을 늘어놓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작가는 청계천 빨래터 한가운데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죠. 누추하고 힘든 일상이 다반사이지만, 어찌 그런 삶이 그들만의 이야기일까요?

“참말이지 그것은 지루한 장마였다. 그동안 그는 거의 담뱃값에도 궁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제는 또 다만, 얼마간이라도 잔돈푼을 만져보게 될 것이다.”

어쩐지 낯익은 문장이군요. 윤흥길이라는 작가의 ‘장마’의 마지막 구절과 같지 않나요? ‘천변 풍경’에서 이 말을 중얼거리는 사람은 빨래터의 주인이랍니다. 똑같은 ‘장마’이지만 사람들이 가지는 의미는 이렇게 차이가 있나 봅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한 모습이 아닐까요?

이 작품 속의 청계천의 모습은 지금, 새로 열린 청계천의 모습과는 무척 다릅니다. 이제 청계천 주변에는 이 소설 속의 사람들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때와는 다른 청계천의 모습이 오늘도 만들어지고 있겠죠.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청계천 산책을 하며 이제는 사라진 ‘천변 풍경’ 속의 풍경을 한번 되짚어 보는 건 어떨까요?

박진선 학림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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