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한미 FTA 국가유기체에서 세계유기체로

  • 입력 2007년 4월 10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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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하지만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아픈 손가락을 잘라낼 줄도 알아야 한다. 목숨을 잃으면 열 손가락 모두 죽게 되는 까닭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몸, 국민은 하나하나의 세포와 같다. 그러니 국가가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면 세포인 국민은 나라를 위해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른바 ‘국가유기체론’의 주장이다.

국가유기체론은 독재국가들이 좋아하는 사상이다.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데는 이만한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시민은 저 혼자만 살려는 ‘이기적인 세포’로 몰아버리면 그만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이 드디어 타결되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와 섬유 등에서 큰 혜택을 보게 됐다. 하지만 농어민들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게 뻔하다. 그럼에도 국가 전체 경제를 위해서라면 희생은 어쩔 수 없단다. 어쩐지 국가유기체론의 냄새가 솔솔 나는 듯하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바뀌어 버렸다. 세상은 ‘국가유기체’를 넘어 ‘세계유기체’가 되어버렸다. 나라끼리의 경제가 밀접하게 뒤엉켜서 어느 하나가 죽으면 다른 쪽도 살기 힘들게 되었다는 뜻이다. 중국의 무서운 경제 성장은 두렵지만, 갑작스러운 몰락은 더욱 무섭다. 중국이 무너지면 우리 경제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유기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두뇌와 심장이다. 세계 경제가 하나의 신체처럼 밀접해질수록 두뇌와 심장 구실을 하는 나라들은 더더욱 두드러질 터다. 하지만 두뇌와 심장에도 건강한 신장과 허파는 소중하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다. 세계 전체로 보아도 한국은 하찮은 발톱 세포 정도로 가벼이 볼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FTA협상에서 우리나라가 미국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협상력을 가졌던 이유다.

살아있는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죽고 새로이 태어난다. 암(癌)은 죽어야 할 때 계속 살아서 문제가 되는 세포들이다. ‘세계유기체’의 눈에 한국의 농어업은 암세포같이 보일지도 모른다. 경쟁력이 없는 데다가 살아날 가망성도 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농어업은 여전히 깨물면 아프고 소중한 열 손가락 중의 하나다. 각각의 장기(臟器) 안에서도 나름의 생존 논리가 있는 법이다. 하나의 몸이 되어 가는 세계 경제 속에서 우리네 아픈 부분을 어떻게 다독이고 배려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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