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용균]달구벌 희망을 노래하다

  • 입력 2007년 4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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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믿기지가 않는 기라예….”

달구벌에 모처럼 생기가 돌고 있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한 ‘야구도시’ 대구에서 시민들은 요즘 야구 대신 ‘육상’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4년 전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지하철 전동차 방화 참사의 악몽을 아직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시민들은 “이제야 대형 참사 도시라는 오명(汚名)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며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대회 유치 과정에서의 정부와 재계의 소극적인 태도 등 악조건을 이겨내고 지역 사회가 똘똘 뭉쳐 ‘큰일’을 해냈다는 자부심도 깔려 있다.

대구 시민들은 지난 30년간 지역에서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긍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 지역경제의 장기 침체로 어려움이 계속되자 자존심은 실추됐다.

대구의 도시 경제력 지표인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0여 년째 전국 16개 시도 중 꼴찌다. 2005년 기준 GRDP는 1057만 원으로 전국 평균(1688만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국 3대 도시의 명성을 자랑해 온 대구는 3년 전 인구도 인천에 3위 자리를 내줘 네 번째 도시로 밀려났다.

전통 섬유산업을 이어갈 성장산업 발굴에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대구의 주민 수는 매년 1만여 명씩 줄고 있다. 젊은 층이 일자리를 찾아 대구를 등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육상 불모지인 대구가 이런 악조건을 뚫고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한 것을 두고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대구경북연구원 홍철 원장은 “지난 10여 년간 민선 시장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도시 인프라 확충 등 지역 사랑운동에 동참한 결과 이번의 쾌거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대구월드컵경기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대비해 2001년 완공됐다. 당시 문희갑 시장은 설계 단계에서 이 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하자는 건의를 물리치고 종합경기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기장 규모도 전국 두 번째로 키웠다. 세계 대학생의 스포츠 제전인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이 경기장에서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연 후임 조해녕 전 대구시장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조 전 시장은 10여 년째 추진된 ‘담장 허물기’ 사업에 박차를 가해 시민들끼리 ‘터놓고 지내는 분위기’를 만들고 도심에 1000여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녹색 도시’로 꾸미는 등 세계적 대회를 유치할 기반을 쌓았다.

이번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가 지역 경제에 숨통을 틔우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시민들은 대회 유치의 주역인 김범일 시장의 리더십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 시장은 “대회 유치로 수천억 원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되지만 시민들이 자신감을 갖고 희망을 가지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라며 “시민의 열정과 정성이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한다.

대회 개최까지 남은 기간은 앞으로 4년. 대회조직위 구성, 관중 확보를 위한 육상 저변 인구 확산, 육상 꿈나무 발굴, 공식 후원사 선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쌓여 있다.

‘김범일호’가 이 과제를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갈지 250만 대구시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지켜보고 있다.

정용균 사회부 차장 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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